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소처럼, 소고기 양배추 덮밥


유난히 힘들었던 2020년이 지나갔다. 모두가 처음 겪는 혼란 속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필자 역시 수년간 진행해 왔던 요리 강의를 올해 전면 중단하였고,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상황을 살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새해가 온 것이 더욱 반갑다. 작년과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상황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찬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일 년간 켜켜이 쌓인 묵은 피로가 조금이나마 녹는 것 같다.     



2021년은 흰 소의 해, 신축년이다. 예로부터 소는 근면과 우직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왔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의미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해 나감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2020년은 도둑맞은 한 해라고 얘기한다. 일이든 취미든 자유롭게 활동했던 것들이 갑작스럽게 중단된 채 한 해를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마음에 조바심이 들 수 있지만,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지혜를 되새기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보자. 멈추지만 않으면 속도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처럼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걸음이 알차면 된다. 속도는 더디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믿음직스러운 소의 발걸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신축년의 시작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요리가 있다. 바로 ‘소고기 양배추 덮밥’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깊은 맛을 내는 한 그릇 요리이다. 소고기에 전분가루를 묻혀 구운 뒤 양배추와 함께 졸인다. 달짝지근한 소스와 덮밥으로 즐기기 좋은 레시피다. 여기서 포인트는 전분가루다. 소고기 표면에 쫀득한 식감을 더해줘 요리 전체의 맛을 끌어올리는 포인트가 된다. 물론 소고기 자체만으로도 고급스러운 식재료지만, 전분가루를 묻히는 과정이 없다면 그저 평범한 소고기 덮밥이 될 테니 잊지 말고 묻혀보길 권한다. 



<소고기 양배추 덮밥>     


필요한 재료

 : 소 홍두깨살 150g, 양배추 한 줌, 양파 1/3개, 밥 한 공기, 전분가루, 고명용 홍고추, 통깨(선택)

  양념 간장 1큰술, 굴소스 0.5큰술, 다진 마늘 0.5큰술,  청주 3큰술,  설탕(올리고당) 0.5큰술, 후추 약간, 물 300ml      


만드는 과정

1. 소고기는 한 입 크기로 썰어 소금, 후추 간을 한 뒤에 전분가루를 묻혀준다.

2. 기름을 두른 팬에 채 썬 양파, 양배추를 넣고 볶아준다.

3. 양파가 반쯤 투명해지면 전분가루를 묻힌 소고기를 같이 구워준다.

4. 소고기 겉이 익으면 분량의 양념 재료를 잘 섞어 팬에 촤악 부어준다.

5. 중약불에서 고기가 익을 때까지 졸여서 완성한다.

6. 밥과 함께 그릇에 담아준다.                



여기에 파프리카, 버섯 등 다양한 채소를 넣으면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양배추 하나만 넣는 것을 선호한다. 소고기 본연의 깊은 맛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저평가 되었던 양배추의 달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맛이 꽉 들어찬 양배추 하나만 있으면 생각보다 많은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위 건강에 좋은 비타민U가 풍부한 양배추는 어떻게 먹어도 우리 몸에 이로운 착한 식품이다. 필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위는 약해졌지만 또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할 때 이 요리를 즐겨먹곤 한다. 부드러운 양배추가 지친 위를 달래주고, 소고기가 허한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이 요리는 필자가 요리연구가로서의 생활을 막 시작할 즈음에 한 요리 포털 사이트에 올린 첫 번째 레시피였다. 원고비로 커피 기프티콘 한 장을 받고, 쉐프로서 설레는 마음으로 올린 이 ‘소고기 양배추 덮밥’ 레시피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은 인터넷에 ‘소고기 양배추 덮밥’을 검색하면 많은 응용 레시피가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전분가루에 묻혀 구워낸 소고기 덮밥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레시피를 참고해 요리 사진을 남겨 주었고, 수백 개의 후기가 달렸다. 잘 먹었다는 인사와 좋은 레시피를 소개해줘서 감사하다는 멘트는 이제 막 시작한 병아리 요리연구가에게 큰 용기와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깊게 심어 주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이 ‘소고기 양배추 덮밥’은 필자에게 초심을 다져주는 소중한 레시피로 남아 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도 초심을 잃지 말고 소처럼 묵묵히 살아가자는 의미로 ‘소고기 양배추 덮밥’ 한 그릇을 만들어 먹었다. 다 먹고 나니 기운이 불끈 솟아난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큰 기복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소처럼 이번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날씨가 유독 추운 요즘, 깊은 맛을 내는 ‘소고기 양배추 덮밥’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은 어떨까. 지난 한 해 동안 수고했다고, 앞으로의 한 해 역시 힘내자는 의미로 담아 정성을 담아 요리해보자. 고생한 몸과 마음에게 따듯한 응원을 보내주는 것만큼 뜻 깊은 한 해의 시작도 없을 것이다.     



* '쿡앤셰프' 사이트 <이주현 셰프의 인생 레시피>에 연재중인 칼럼으로,  1월 19에 발행된 '1번째 인생 레시피_소고기 양배추 덮밥' 편 입니다. (요리, 사진, 글 = 이주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