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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니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 목이버섯 전골


어렸을 때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어서 거들떠보지 않았던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이를테면 명절 때마다 커다랗게 부쳐 내는 녹두전이 그랬다. 커다랗고 까만 프라이팬이 꽉 차도록 넣은 녹두 반죽은 뒤집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엄마는 명절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본인의 얼굴보다 큰 녹두전을 뒤집느라 끙끙거렸다. 대체 저 밍밍하고 푸석한 맛이 뭐 그리 좋다고 저렇게 힘들게 만드는지, 어린 나는 늘 의문을 품으며 엄마 옆에서 그 기묘한 모습을 구경했다. 나가서 걸쭉하고 매콤 달콤한 떡볶이 한 그릇을 사 먹는 것이 훨씬 좋은 시절이었다.     


그 후, 비가 오는 날이면 일부러 전 집에 들러 막걸리와 함께 녹두전을 시키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녹두전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밍숭맹숭한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되어 기름과 함께 입 안으로 진하게 퍼져 나갔다. 푸석한 식감은 입 안에 넣자마자 흩어지는 녹두 입자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입 안에 오래 남아 그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었다.     


녹두전과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고 나서야 좋아하게 된 음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목이버섯'이다. 사실 평소에 목이버섯이 들어간 요리를 접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날,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늘 목이버섯과 대면해야 했다. 부모님께서 정성스럽게 차려 주신 생일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수육과 갖가지 고운 색감으로 물들인 잡채에 늘 목이버섯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자주 먹는 반찬이나 국에 목이버섯이 들어가 있었다면 이렇게 목이버섯을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날에, 행복의 절정에 순간에 늘 시꺼먼 목이버섯이 불청객처럼 끼어 있는 것이 어린 나는 영 못마땅했다.     


나는 탕수육 그릇에서도, 잡채 그릇에서도 늘 목이버섯을 가장자리에 골라 놓았다. 으레 그것이 이 요리를 먹는 당연한 순서인 듯, 미끌미끌한 목이버섯을 잡기 위해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곤 동시에 생각했다. '대체 왜 이 훌륭한 요리에 목이버섯을 넣어 오점을 만들까.' 입 안에 넣으면 제멋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목이버섯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기분이 나빴다. 겨우 이빨 사이에 넣어 몇 번 씹으면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 게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목이버섯은 오로지 어른들을 위한 식재료임이 분명했다.     



이제는 생일이 돌아오면 오히려 부모님께 생일상을 차려 드리며 감사 인사를 드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치 이 나이를 기점으로 그렇게 되어야만 하듯, 목이버섯을 향한 나의 적대적인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탕수육이나 잡채에 들어 있는 목이버섯이 어찌나 맛있던지. 미끌미끌한 식감은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으로 입 안에서 경쾌하게 굴러 다녔다. 열심히 씹어서 맛을 느껴보면 목이버섯이 가진 고유의 맛은 없었지만, 대신 함께 요리한 식재료의 풍미가 그대로 흡수되어 깊은 맛이 났다. 나머지 식재료를 빛내 주지만, 이 새까만 색의 탱글한 목이버섯은 조연으로만 그치기에는 그 존재감이 너무나 두드러졌다.     


그렇게 목이버섯의 진가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양한 요리에 목이버섯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시절 품었던 안 좋은 감정에 대해 용서를 구하듯, 목이버섯이 더욱 맛있어 지는 요리 연구에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볶아도 보고, 삶아도 봤다. 그 결과, 함께 넣은 식재료의 풍미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목이버섯의 진가가 200% 발휘되는 메뉴는 국물 요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메뉴도 바로 '목이버섯 당면 전골'이다.     



<목이버섯 당면 전골>
    

▌필요한 재료

소불고기 600g, 느타리 버섯 1줌(다른 버섯으로 대체 가능), 양파 1/2개, 대파1/2개, 목이버섯 한 줌, 당면 기호껏 

*고기 양념 : 설탕 3스푼, 참기름 1스푼, 액젓 3스푼 

*육수 : 물 400ml, 설탕 1큰술, 진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만드는 과정

1. 소불고기를 양념과 함께 간을 재워 놓는다.

2. 냄비에 소불고기, 느타리버섯, 양파, 대파, 분량의 육수를 넣고 끓여준다.

3.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목이버섯, 당면을 넣고 끓여준다.

* 당면은 불리는데 시간이 소요되므로 미리 불려서 물에 넣는 것이 좋다.     



이 요리는 쫄깃함으로 가득찬 요리이다. 목이버섯의 탱글한 식감과 당면의 쫀득한 식감이 입 안에서 발랄하게 춤을 춘다. 요즘은 넓적한 중국식 당면이 유행이어서 활용해 봤는데, 일반 당면도 괜찮다. 소면을 넣으면 한결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집에 있는 다양한 채소를 넣으면 더 풍성하고 진한 전골로 응용이 가능하다. 냉장고를 정리하기에도 그만인 착한 메뉴이다.      


언제나 환영받는 소고기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어 깊은 감칠맛을 내는데, 목이버섯에 그 진한 국물이 흠뻑 배어 있다.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목이버섯과 친하지 않다면, 이 요리로 목이버섯의 매력에 입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어른들의 술 안주로도, 아이들의 든든한 식사 한 끼로도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다.      


아무리 맛이 좋더라도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전골을 먹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겨울의 끝 무렵 즈음이자 봄이 성큼 다가오는 지금, 더 늦기 전에 '목이버섯 당면 전골'을 꼭 해먹기를 당부한다.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봄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언제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입맛이 변하는 재미있는 순간을 겪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쿡앤셰프’ 사이트 <이주현 셰프의 인생 레시피>에 연재중인 칼럼으로, 3월 8일에 발행된 ‘5번째 인생 레시피_목이버섯 당면 전골’편입니다. (요리, 사진, 글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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