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가의 딜레마
흙 위에 깡마른 수단 아기가 웅크리고 있고 그 뒤에 독수리 한 마리가 지켜보고 있는 사진. 1993년 사진작가인 케빈 카터가 찍은 <수단의 굶주린 소년>이다. 이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아프리카의 기근문제를 알렸고 다음 해 작가에게 퓰리쳐상까지 안겨 주었다. 만약 사진 속의 작은 아이가 중년의 아저씨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상은커녕 이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기부 캠페인에도 도움이 필요한 '수혜자'가 등장한다. 수혜자 중 많은 이들이 연약하고 어린아이인 이유는 그만큼 기부자들이 안타깝게 여길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 모금이 잘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것을 알기에 수혜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고민이 많아진다.
항암치료 중인 범수(가명)씨는 다자녀를 둔 중년의 가장이었다. 그는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되 초등학생인 자녀들을 공개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병원에 갈 때마다 출장을 다녀온다 말한다고도 했다. 범수 씨가 마음 편히 인터뷰에 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오전 시간대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의 얼굴 대신 그들이 그린 그림이나 작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출발할까요?"
카메라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챙기고 사업팀 담당자와 함께 범수 씨의 집으로 향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아내와 비니로 머리를 가린 범수 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범수 씨는 거실에 놓인 가족사진에 비해 많이 수척했다. 그의 얼굴은 거듭된 치료로 기력이 없는 탓인지 우리가 낯선 탓인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인터뷰 내내 무표정이던 범수 씨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기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아기의 옆모습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 남편은 어떠 사람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인터뷰하는 동안 몰래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울음을 참아가며 대답했다.
"남편은.. 정말 자상한 사람이에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애들부터 챙기고.. 어딜 가서도 나쁜 소리 한번 들은 적 없는.."
아내의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던 범수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순간 '이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아무래도 난 퓰리처상은 못 받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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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수 씨 캠페인을 오픈한 지 2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NGO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모금 성과를 낸 외부 모금전문가에게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그분은 교육 말미에 우리 기관이 진행 중인 캠페인도 봐주셨다. 그중에 범수 씨의 페이지도 있었다.
"이 캠페인 모금 잘 돼요?"
"아직.. 잘 되진 않습니다." 팀장님이 대답했다.
"삼 남매 아빤데 삼 남매가 없잖아요."
전문가의 지적에 마음 한켠이 쿵 내려앉았다.
'.. 역시 어떻게든 아이들을 찍었어야 했던 걸까.' 나의 어설픈 오지랖 때문에 범수 씨의 마음은 지켰을지언정 기부자의 마음은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모금이 부진하면 결과적으로 수혜자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원금을 전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비영리 모금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주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수혜자가 나이가 많든 적든 기부자를 설득할 수 있는 슬기로운 모금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