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을 좌우하는 건 시간일까, 신경일까?
이 글의 BGM으로는
오마이걸 유아의 숲의 아이를 권합니다.
길을 잃으면 키가 큰 나무에게 물어야지
그들은 언제나 멋진 답을 알고 있어
이제 난 가장 나 다운 게 무엇인지 알겠어
나는 찾아가려 해 신비로운 꿈
- 숲의 아이 가사 中
최근 상품 상세페이지가 정상 노출되지 않는 이슈를 해결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마음에서는 여전히 열정 가득한데.. 요즘 두통이 너무 심해서 생각을 깊게 할수록 머릿속에서 길을 잃는 느낌이 든다. 멍- 두뇌회전이 멈춘 느낌. 말 그대로 NOT FOUND. 마치 오류가 난 듯 내면의 생각 페이지를 찾을 수가 없다. 근데 진짜 문제는.. 이걸 어찌 해결한담? ㄴʕʘ‿ʘʔㄱ;;
친한 동료에게 요즘 내 정신상태가 글러먹은 것 같다고 했더니 슬랙을 꺼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최근 추석 연휴나 백신 휴가 등 쉬는 날은 많았는데 사실 쉰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최근 2차 접종을 맞고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라며 대기실을 내어주셨는데, 그 15분을 못 참고 지라와 슬랙 앱을 오가며 코멘트를 달았다.
사실 엄청난 착각인걸 아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각 실무자들 사이에 있으니 요구사항부터 오류 해결, 작업 전 의사결정 확인차 등 다양한 물음표들에 쌓여있는데, 나는 내가 답변을 해야 그 사람도 일을 할 수 있으니 기다리게 하기 싫은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잠깐의 텀이 생겼다. 전사에서 시스템적으로 체계를 잡아 여유가 생겼달까.
최근 준비하던 프로젝트들이 외부 요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잠깐 멈추게 되었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다음 목표를 계획하고 추진했을 텐데, 마침 한 동료분께서 우리 팀의 엔지니어링 매니저 역할을 해주시게 되어 전력 질주보다는 잠깐 멈추어 전반적인 백로그 그루밍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스프린트에 필요한 전달사항을 미리 정리해 넘겨드렸고, On Call 시스템 도입으로 개발 리소스도 전보다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정말 마음 놓고 슬랙을 꺼도 되지 않을까?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흔치 않다. 이때다 싶어 냉큼 반차를 썼다. 그리고 아이폰 앱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늘의 집, 지그재그, 쿠팡이츠... 아니 뭘 사거나 먹는 거 말고! 나의 두통 404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쏘카 앱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 나는 타다를 쓰는데 최근 쏘카 오피스에 방문할 일이 있어 미리 깔아 둔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이제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차가 없네 ʕʘ‿ʘʔ; 차가 있을 땐 좋아하는 노래만 플레이리스트에 담아서 드라이브도 자주 다녔는데.. 고민 끝에 친구와 글램핑을 계획 후 쏘카를 켰다.
나도 일을 안 하고 싶은데 쏘카 앱에 고객을 위한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서 캡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회사에서 바로 수강이 가능한 클래스만 모아 보여주는 페이지에서 매진된 인기 클래스가 상단 노출되는 이슈가 있었다. 매진되어 구매 및 수강할 순 없지만 인기 상품이니 그대로 노출해 클래스 재오픈 요청을 유도할지, 아니면 바로 수강 가능한 상품이 아니니 해당 페이지에서는 우선 제외하고 노출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쏘카는 상품 카드 UI를 불투명하게 처리해 이용 불가한 상품도 동일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당 상품을 이용하기 위해선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명확한 CTA 문구와 함께 클릭 시, 차량 대여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액션을 잘 유도하고 있었다. 따로 학습할 필요 없이 유저는 자신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차량들 중 고민 끝에 운전이 익숙한 모닝 어반을 골랐다.
그리고 시간을 다시 조정하려는데 차량 대여 기간과 시간을 한눈에 보여주어 너무 편했다. 또 마치 금융 앱에서 송금할 때 자주 보내는 금액의 단위를 클릭할 수 있듯, 자주 쓰는 추가 시간으로 추정되는 1일, 1시간, 30분을 + 표기와 함께 따로 버튼으로 만들어 두어 편하게 추가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알아야 하는 정보에만 컬러 포커싱 처리되어 시선이 분산되지 않아 좋았고, 쏘카 브랜드 컬러를 활용한 것도 센스 있었다.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 열고 닫을 수 있는 토글을 활용해 유저가 굳이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스크롤할 필요 없는 UX도 편했다. 그리고 나는 날짜를 표기할 때 항상 요일을 붙여 쓰는데, 이는 읽는 사람이 혹여나 날짜를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한 미연의 방지랄까. 쏘카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디테일들이 좋았다.
최종 단계에서 결제하려는데 쏘카를 가입했던 당시 등록해둔 신용카드가 지금은 분실 처리된 카드라 결제에 실패했다. 소름 돋는 건 그 와중에 토스가 일시불 승인 거절되었다고 알려줌 (ㅠㅋㅋㅋ)
내가 생각하는 UX Writing은 고객 경험을 위한 메시지다. 그리고 오류 메시지에서 이상적인 라이팅은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방안까지 함께 알려주는 것이다.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오류 메시지의 경우 보통 결과 또는 해결 방안만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홈택스 연동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주세요.'
사실 고객의 입장에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인과 해결방안이 더 궁금하다. 그리고 쏘카는 원인과 결과, 해결 방안을 함께 알려주고 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자면 '결제 실패'를 '예약 실패'로, 볼드 타이틀을 '예약 실패'가 아닌 '잠시만요!'로 보다 긍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디테일이 좋았다. 그리고 실패 사유 역시 정확했다. 내가 등록한 카드가 분실 처리된 카드였기 때문이다.
잔액이 부족했던 거라면 결제 오류 파악 로직에서 이를 감지하고 메시지에서 다르게 표기하는지 까지는 테스트 해보진 않았지만 궁금하긴 하다. 쨌든 쏘카를 이용하는 내내 UX의 디테일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앱 속도도 빠름.)
기분 좋게 차량을 대여해 글램핑장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스마트 키는 처음 사용해봤는데 정말 편했다. 생각해보니 쏘카는 운전 경험마저도 바꾸어 준 것 같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김동률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 씽씽 달렸고, 핸들을 잡은 손 끝에서 그제야 완연한 가을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쏘카가 대여 차량이다 보니 휴대폰을 걸 수 있는 거치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진 않아서 내비게이션 앱 보다는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라 앱에서 스테이시를 멘션 한 댓글 알림이 울렸다. 생각해보니 슬랙만 끄고 지라를 안 껐군! 그런데 운전을 해야 하니 알림을 확인만 하고 답변을 위해 따로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도착해서 답변해야겠다.' 하고 다시 시선을 하늘로 옮기며 문득 생각했다.
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나의 워라밸을 좌우하는 건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신경이 아닐까?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쓸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니 그제야 나의 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쏘카 덕분에 나는 뜨끈뜨끈한 가평 해물 수제비 맛집을 섭렵할 수 있었고, 2시간 동안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불멍을 때릴 수 있었으며, 활활 타오르다 서서히 식어가는 불길을 보며 그동안의 내 열정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식어도 괜찮다. 다시 불 피우면 되니까.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장작이다. 그 장작은 무엇일까.
UX Writing? 검색 기능 고도화? 기깔나는 랜딩페이지 제작?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의 회사는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장작의 종류가 많은 곳이고, 내가 불을 피우겠다고 했을 때 불난리가 날까 걱정하는 곳이 아니라 캠프파이어처럼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주는 곳이라는 점이다.
최근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그 상황들에는 문제도 있고, 유혹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불을 다시 지피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불길이 되살아 날 수 있을까? 이제 시스템적으로 속도에 여유가 생겼으니 내 커리어 방향을 고속도로 그대로 정주행 할지, 잠시 휴게소에 들릴지, 국도로 빠질지 고민하려 한다.
가을이 다가왔음이 실감 나는 주말,
기나긴 쏘카 앱 사용 후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