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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Mar 10. 2022

사랑과 이별에도 가설을 세워본다면

이 글의 BGM으로는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의 OST <Butterfly>를 권합니다.

왜 너 맘대로 내 맘을 어질러
너는 결국 날아가겠지
like a butterfly

- Butterfly 가사 中





 데이터 vs 여자의 촉

최근 송강, 한소희 주연의 드라마 <알고있지만>에 빠져 정주행을 하고 있다. 전에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시리즈를 보고 내 브런치에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앱. 쓰시겠습니까?'라는 글을 쓴 적 있는데, 그때도 감성적인 드라마를 보면서 직업병이 나온다는 고민을 한 적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좋아하면 울리는>을 보며 '진심을 어떻게 아이폰에 동기화 하지?', '개인 정보 보호 정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좋알람 시대가 온다면, 연애 코칭 클래스보다 해킹 클래스가 더 잘 팔리지 않을까?' 등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이내 현타가 밀려왔다. ʕʘ‿ʘʔ..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앱.
쓰시겠습니까? 中


이번 드라마는 전개 자체가 썸이 길다.

그래서 보는 내내 여자 캐릭터들이 가설을 세우고,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는 장면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1pager를 쓰고 있었다. 저번보다 직업병이 발전한(?) 내 모습을 자각 후 또다시 현타가 밀려왔다. (ㅠㅋㅋㅋ)


생각해보면 우리는 꼭 일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시그널을 분석하고 가설 세우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있기에 크고 작은 실패를 겪고 배우며 성장하는 게 아닐까? 쨌든 이번 글은 뾰족한 가설 세우기를 빙자한 드라마 리뷰다.





 사랑에도 가설을 세워본다면

첫 번째 상황은 친한 친구지만 술김에 하룻밤을 보내버린 빛나와 강헌의 이야기다.


강헌은 진심이었다며 마음을 고백하지만, 빛나는 실수였다며 그의 마음을 거절한다. 이후 강헌은 소개팅을 나가게 되고, 내심 그를 신경 쓰며 지켜보고 있는 빛나의 시점이다. 소개팅녀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왔고, 사실 빛나와 강헌은 "치약을 왜 돈 주고 사 먹냐"는 민초 극혐단이다. 빛나는 뚫어지게 강헌의 반응을 살핀다.


출처: <5화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 Situation: 민초 극혐단인 강헌이가 소개팅에서
- Motivation: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다면
- Expected Outcome: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맛있는 척 먹어줄 것이다.


강헌은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고, 충격을 받은 빛나는 진탕 술을 마신다. 민트 초코까지 먹었지만 소개팅은 잘되질 못했고, 이후 둘은 서로의 마음을 다시 고백하는 장면에서 이 민트 초코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다.


출처: 5화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알고 보니 상대방이 고른 게 아닌 강헌이 먼저 스트레스랑 불면증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민초에 도전해 본 것이었다. 이 와중에 나는 해명의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했지만 (ㅠㅋㅋㅋ) 쨌든 가설 중 Situation에 변수가 있었던 것이다. 항상 결과를 받아들일 땐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에서 변수들이 없었는지 신경 써야 한다.



두 번째 상황은 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상태인 주인공 나비와 재언의 이야기다.

재언은 모두에게 친절한 성격이라 인기가 많고, 그런 재언을 지켜보며 나비는 좀 더 확실한 시그널을 원한다.


출처: 2화 <나만이 아닌걸 알고있지만>

친구인 빛나가 보기엔 나비에게만 특별해 보이는 친절도, 이미 마음이 헷갈리는 여러 상황을 겪은 나비에겐 긍정 시그널로 와닿지 않는다. 마침 1차가 마무리되고, 다른 약속이 있다며 재언은 술자리를 떠나려 한다. 그리고 나비는 이때 재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떠나려는 재언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자며 2차를 제안한다.


출처: 2화 <나만이 아닌 걸 알고있지만>
- Situation: 선약이 있어 술자리를 떠나려는 재언이
- Motivation: 나비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면
- Expected Outcome: 약속을 취소하고 함께 나비의 집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안 알려줌 (˵ ͡° ͜ʖ ͡°˵) 히

결말은 넷플릭스에서!





 이별에도 가설을 세워본다면

프로덕트 오너는 매일 아침마다 대시보드를 보며 과거에 수집된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에 대한 전략과 방향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크고 작은 시그널이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곡선을 그리게 될지 몰랐던 게 아니다. 알고 있었고, 예측 가능했다. 이때 처음 했던 고민은 '계산적으로 행동할 것인가?'였다.


애정 곡선에 문제가 있다면 가장  퍼널인 '표현' 힘을 실어, 여전히 너를 좋아하고 아낀다는 마음을 전하는데 더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러질 않았다. 남녀의 만남이 반드시 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뤄야 하는 OKR 아니지 않은가. 그저 서로의 감정과 하루들에 충실해야  뿐이었다.


프로덕트 오너라면 실험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Andon. '언제 종료할 것인가?' 조금 더 명확하게는 '어떤 지표가 어디까지 하락했을 때 또는 어디까지 상승했을 때 이 가설 검증을 멈출 것인가'이고, 이를 미리 정하는 이유는 프로덕트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만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자 자신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정해둔 최소한의 선이 있을 것이고, 이를 넘을 경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별이라는 종료를 선택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사용자 경험이 익숙하다면 그전부터 알림 수신 동의를 구했을 것이고, 서툴었다면 대뜸 회원가입부터 권유했을 것이다. 이별이라는 사용자 경험이 익숙하다면 미리 수차례 경고 팝업을 띄워줬을 것이고, 서툴었다면 바로 오류 메시지와 함께 강제 닫기 처리해버릴 수도 있다.


결국 디테일한 사용자 배려는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경험이라는 건, 그 자체로 소중하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 알고있지만 대사 中


직업병과 작가병 그 사이에서,

과몰입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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