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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Sep 02. 2023

그렇게 시작된 갭먼스 또는 공백기.

백수테이시가 되다.

지난 글 <퇴사가 고민될 때, 회사와의 관계를 연애에 대입해 보자>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 글의 BGM으로 이효리의 <Seoul>을 권합니다.

높은 빌딩과는 너무 멀어 지하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안에 완전히 다른 삶
Seoul city 하늘에는 별이 어두워
우린 숨고 싶어 해 자꾸만 입어 검은 옷

- Seoul 가사 中




 백수테이시가 되다.


따스해진 3월, 우스갯소리로 가족들에게 알렸다. 나는 이제 스테이시가 아니라, 백수테이시야.

영상통화 속 가족들에게는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지만, 한동안 마음이 꽤나 힘들었다.


처음엔 무례하고 무책임한 회사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냥 내가 압도적인 성과와 실력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내가 부족해서 그래." 

여러 환경적인 요인과 상황들이 있었지만, 내 탓을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 그 생각도 멈추기로 했다.


이미 다 지난 일이기 때문이었다.

되새김질하며 상처 주고 있는 건 나였다.



 김긍정 작가님께


퇴사하고 다음 주에 한 메일을 받았다.

다름 아닌 출판사의 출간 제안이었다.


작년에 브런치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그때 떨어진 작품 <전지적 PM 시점>을 보고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을 준 것이었다. 출간 제안의 이유가 구독자수가 1,000명 이상 되어가는 시점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미팅을 가져보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긍정 작가님이

글을 정말 깔끔하게 잘 쓰셔서요.

구성도 짜임새 있고요."


그렇다. 작가.

글을 잘 쓸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 연차가 적어도 들려줄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책을 쓸 자격 같은건 스스로 운운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지금 도전해 두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가 되었을 때, 출판이라는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서툴었던 실수, 작은 성취를 담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결심했다.





 갭먼스 또는 공백기

작가가 되어 책을 쓰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약 한 달간 집필계획서를 수정해 갔고, 서로 협의된 내용으로 계약서를 만들어 도장을 찍었다. 새빨갛게 쾅 박힌 내 이름을 보자 작가라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음을 체감했다. 이제 착실히 계약기간에 맞춰 글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2023년이자 나의 29살은 진지하게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보낸 나의 시간들을 톺아보고, 30대의 나와 커리어를 계획하며 보내기로 결심했다.



계약서를 마무리하고

홀로 카페에 앉아

3가지의 갭먼스 원칙을 세웠다.


1. 조급히 이직하지 않는다.

2.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한다.

3. 나만의 이키가이를 찾는다.





1. 조급히 이직하지 않는다.


회사와의 상황과는 별개로 브런치와 서핏의 '제안하기' 기능 덕분에, 나는 다른 회사들과 이미 티타임이나 면접을 진행 중에 있었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조직 방향성에 있어 과감히 퇴사라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집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더해지자, 좀 더 방향성에 대해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봉을 제일 잘 주는 곳이 아니라,

나만의 방향성을 먼저 확립해야 했다.

나는 1순위 가치로 "기여"를 택했다.



 (1) 내가 기여하고 싶은 산업은?

K-pop 혹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클래스101에서 여기어때로 이직 후, 조직문화 그리고 산업 변화에 있어 많은 혼란을 겪었었다.

조직문화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산업 변화가 주는 힘듦을 이직할 때 예측하지 못했었다. 그땐 첫 이직이기도 했고, 겉으로 봤을 땐 상품을 탐색하는 유저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O2O로 산업이 바뀌자,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사업과 제품 둘 다 유저의 지역과 날짜에 영향을 받으니 고객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는데, 산업 관련 지식이 앝으니 초반에 갈피를 잘 못 잡아 고생을 꽤 했었다. (참고. 탐색 PO 입장에서 "구매"와 "예약"은 무엇이 다를까)


그래서 앞으로의 이직에서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은 산업일 수밖에 없었다. 예약을 중심으로 하는 O2O 플랫폼 또는 여행·여가 산업을 유지할 것인지, 또 다른 도전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고민 끝에 앞으로도 변치 않고 기여하고 싶은 산업으로 나는 'K-pop' 또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택했다. (나는 예고, 예대 출신의 음악 전공자다.)



 (2) 내가 기여하고 싶은 제품은?  

사업기획부터 참여할 수 있는 제품


제품을 런칭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사업 성장이 더디다는 이유로 제품 팀이 없어지고 직무까지 변경해야 했던 이번 사건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대담하게 내가 사업기획부터 참여할 수 있는 제품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3) 내가 기여하고 싶은 조직은?

나를 믿고 기회를 줄 수 있는 곳


사업기획부터 제품 성장까지 오롯이 도전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조직이어야 했다. 그러려면 탑다운으로 목표 수치와 업무가 내려와 프로젝트마다 할당을 받는 체계가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로드맵을 설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연차가 적은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려면 무엇보다도 나의 진심과 가능성을 믿어주는 리더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이 오랜 고민 끝에 갭먼스 첫 번째 원칙은

"조급히 이직하지 않는다"로 정했다.




2.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한다.


스스로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어떤 것을 계획하고 완성까지 해냈는지,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 측면에서 내가 무엇을 잘했고 또 부족했는지 과감히 평가해 보기 시작했다. 함께 일했던 주위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구하기도 했고, 다른 직장을 다니는 비슷한 연차의 PM·PO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강점은 어떻게 더 뾰족하게 만들 수 있을지, 약점은 어떻게 순차적으로 보완해 나갈 수 있을지 등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알아가는 계획을 세웠다. 책의 일부를 쓰는 동안 공백기를 가질 것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내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3. 나만의 이키가이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갭먼스 동안 진정한 성장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부끄럽게도 사실 30대의 나를 상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책과 영상을 참고한 끝에 평소 좋아하는 크리에이터 드로우앤드류 님의 이키가이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키가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돈이 되는 것,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고, 그 교집합을 찾았을 때 비로소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동그라미를 정말 많이 그려보며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나 많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또 한 번 직감했다.



이번 갭먼스는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거야.


https://youtu.be/b1vutpefBVU?si=SdBbRrJ-6cWKuk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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