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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Aug 11. 2023

퇴사가 고민될 때, 회사와의 관계를 연애에 대입해 보자

이 남자. 계속 만나는 게 좋을까?

이 글의 BGM으로는 아리아나그란데의 <Thank u, next>를 권합니다. 

One taught me love
One taught me patience
And one taught me pain
Now, I'm so amazing

- Thank u, next 가사  中



 2월의 어느 날. 

한 임원분께서 내게 면담을 신청하셨다. 입사 후 1년이 더 넘었지만 처음 하는 1on1이었고, 지난 11월에 내가 속한 사업의 조직을 축소화할 예정이라 다른 사업으로 업무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전달받았기에 그에 대한 답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나는 1) 직무 변경 요청, 2) 원맨팀으로 전환, 3) 이에 대해 결정할 시간은 일주일이라는 쓰리콤보를 맞았다. 


너무 놀랐다.

일단 변경을 요청받은 직무는 "Change Manager"였다. 


생소한 직무명에 내가 당황해하자 제품 변화를 관리 및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해보면 좋겠다고 설명받았다. 구체적인 맥락을 여쭤보았고 크게 두 가지의 이유였다. 첫째는 회사에서 기대하는 프로덕트 오너 업무를 수행하기에 아직 내 능력 특히 제품 운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둘째는 내가 이전에 만든 시스템이 효율성 측면에서 임팩트가 있고 그걸 전사화 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내가 예약 및 판매 시스템을 기획한 적 있는데, 그때 하루라도 더 빠르게 호스트들이 가격을 등록해야 앱에 노출되어 판매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품의 가이드를 영상으로 만들고, 유튜브에 프라이빗 링크를 올려 우리의 고객이 직접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어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였다. 


위처럼 내가 만든 시스템이 전사화 되면 

"PO ↔️ 이해관계자(영업+운영+상담) ↔️ 고객" 간 제품 변화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폭발적으로 줄어든다. 

참고. <우리가 만든 제품의 사용법을 알려주며 느낀 점>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가 속한 사업의 인원을 줄여야 함과 동시에 내가 영상제작에 대한 기술력도 있고, 제품에 대한 이해도도 있으며, 타인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경력도 있으니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당시에 허가를 받고 촬영한 사진. 내 인생에 변환점이 될 순간이라 직감해 이 순간을 담아두었다. 

그리고 임원분이 보시기엔 나의 강점이 서비스 기획보다는 콘텐츠 기획에 더 부합하기 때문에, 그것을 살리는 것이 더 높은 곳에서 출발해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변환점이 될 거라 말씀해 주셨다. 


"스테이시의 강점을 한번 제대로 고민해 보세요."라는 말씀이 뇌리에 박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에게 감사한다. 

왜냐하면 이 위기가 내 인생을 또 한 번 변화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콘텐츠 기획은 8년을 했고, 

서비스 기획은 2년을 했다. 


사실 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Apple의 공식 Final Cut Pro X Certificated를 갖춘 준전문가다. 쉽게 말해 콘텐츠 기획은 훨씬 더 많은 인풋과 아웃풋으로 축적된 능력이라 서비스 기획보다 더 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는 나의 사전 배경을 모르시니 되려 나의 타고난 강점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일단 멍하니 그 방을 빠져나왔고, 그다음 날이었던 금요일에 연차를 썼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에 팀장님의 지시로 나는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사실상 내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면담을 앞둔 목요일 점심시간에 한 동료에게 이미 모두 인수인계 된 이 상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상황과는 별개로

내가 상처받은 것은 먼저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말하지 않고 수긍하면 회사는 이번에도 자신들이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기에 내가 용기를 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임원분께 논리적으로 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그때 일주일의 시간 동안 영혼은 나가있고, 온몸에 힘이 없던 상태였다. 그러자 그 동료는 "스테이시는 글을 잘 쓰잖아요. 글로 쓰면서 정리하고 연습해서 가봐요." 하며 초콜릿을 건넸다. 그렇네? 나는 글로 써보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왜 내가 놀랐고, 허무했고, 상처라고 받아들였는지 나도 내 감정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UX Writer ➡️ Product Owner ➡️ Change Manager ➡️ ? 


Why 1. 나는 왜 놀랐을까? 

그 이유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 적응할 물리적인 시간이 약 일주일 정도로 짧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목) 직무변경 요청, (금) 연차 / (월~금) 인수인계 / (월~) 원맨팀으로 새로운 업무 시작



Why 2. 나는 왜 허무했을까? 

그 이유는 내가 이미 이 회사에서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UX Writer로 지원을 했는데, Product Owner로 합류할 것을 먼저 제안한 것은 회사였다. 

이렇게 갑자기 임원분께 직접 직무 변경을 요청받고, 팀장님의 지시로 일주일 만에 인수인계를 마친 뒤 바로 그다음 주부터 원맨팀 체제로 혼자 생소한 업무에 투입되는 것보다는 어떠한 부분이 부족해서 이를 언제까지 개선되면 좋겠다, 이에 대해 회사는 직무 변경 요청까지도 실은 고려하고 있다는 솔직한 피드백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그래서 그 안에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 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아쉬움과 허무함이 컸다.

사실 나는 이 상황이 실무자의 능력이나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 조직들에 비해 아직 1on1과 피드백 문화 및 성과 평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아니라 운이 나빴다. 



Why 3. 내게 왜 상처라고 받아들여졌을까? 

그 이유는 해당 제안이 진짜 나를 위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UX Writer로 지원했는데, Product Owner로 제안받아 1년 넘게 이 일을 했습니다. 이번에 제안받은 Change Manager도 회사를 믿고 따라 열심히 일한다 해도 또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직무도 생소해서 이 회사에서도, 나중에 이직을 할 때도 저는 Next가 잘 그려지지 않아 걱정이 됩니다."


"스테이시는 실리콘밸리에 가고 싶어 하잖아요.

실리콘밸리에서 Change Manager를 한국에서 찾으면, 스테이시가 가장 눈에 띄겠죠."


사실 Change Manager는 제조업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자 파생된 개념으로 소프트웨어 제품 조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직업이다. 미국에서도 극 소수인데, 한국에서는 과연 얼마나 이 직무를 얼마나 필요로 할까? 




 이별 원칙 

회사와의 관계를 연애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이 남자. 계속 만나는 게 좋을까?


내게는 세 가지의 이별 원칙이 있다.

1. 내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할 때. (e.g.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등)

2.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기보다 자신의 의도에 맞게 바꾸려 할 때. (e.g. 패션 취향, 직업, 중요한 선택 등)

3. 더 이상 그가 그리는 미래에 내가 없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이를 회사와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1. 이미 내 마음은 너덜하다고 느껴질 만큼 아프다 못해 참담했다.

2. 내가 좋아하는 옷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히려는 상황이 꽤 비슷하다고 느꼈다. 

3. 진심으로 나를 애정했다면 "실리콘밸리가 당신을 찾겠죠" 같은 허무맹랑한 말보다
"우리 회사와 함께 어떠한 임팩트를 그려나갈 수 있다"라는
 책임감 있는 미래를 제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마음이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여기어때를 미워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평소에 대화를 자주 많이 나누었다면 결말이 다르지 않았을까싶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지난날의 전 남자친구처럼

나보다 예쁜 여자는 싫지만

그래도 정말 따뜻하고 현명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나만큼 널 애정하는 PO는 다시없을 거야.

그래도 그만큼 멋진 PO를 만나 계속 사랑받는 제품이 되길 바라!


Thank u, next. 


프로덕트 오너로서의 

두 번째 연애 마침. 

One taught me love
One taught me patience
And one taught me pain
Now, I'm so amazing

- Thank u, next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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