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색깔이 달랐던, 나의 첫 목걸이를 내려놓다.
프리랜서 강사의 특성상 나는 졸업식 후 봄방학이 시작되는 2월인 오늘, 강사 계약이 만료되었다.
사실 코로나 19 때문에 2020년은 정말 많이 힘들었고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이 감정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켰다. 요즘 브런치 덕분에 작가병을 앓고 있다.
이번 주에는 2년간 몸 담았던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했고,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을 치렀다.
계속 섭섭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쩌면 음악.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를 내려놓는 순간이라 그런 것 같다.
물론 작품 발매를 위해 밤마다 고군분투하겠지만 원래 음악과 방송, 강의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선택과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야 유지되기 때문에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쉬우면서도 동시에 후련하다.
애꿎은 목걸이를 어루만지며 나는 오늘에서야 2020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 새로운 목걸이를 갖기 위해 열심히, 간절하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목걸이다.
래퍼를 꿈꿨던 나는 쇼미더머니에 참가한 적 있는데
그때 "왜 심사위원은 목걸이를 채워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진 적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가 없는 인디펜던트 래퍼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랬던 건 '소속감'과 '인정'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 깊은 그 갈증을 Mnet은 유명 래퍼가 목걸이를 씌워주는 장면으로 잘 표현해냈다.
예대 졸업 후 나는 YTN, CJ HELLO, 교육부 등 여러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일했고 유튜버와 BJ들이 급부상하며 금방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직업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대중들은 보통 개그맨들만 설 곳이 없어졌다고 기억하는데 방송 리포터들 역시 갈 곳을 잃게 되었다.
그 이후 마케팅 대행사에 취업도 해보았지만 스타트업이라 회사가 불안정해 금방 관두게 되었고 나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강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는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다. 그렇게 여러 곳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다 어느 한 학교와 정식으로 일하게 되며 첫 목걸이를 획득(?)했다.
내 얼굴과 이름이 박힌 목걸이를 걸고 점심시간에 먹는 급식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이지 짜릿했다.
아직도 강단에 서던 첫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학생들 보다 더 순수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싶었다. 또 내가 맡은 과목은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손목을 갈아가며 밤새 PPT를 준비했고 매주 기차를 타며 공황장애를 삼켜냈다.
내 목걸이 색은 유일하게 짙었고 아무도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뻤고 뿌듯했고 행복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일과 학생들을 사랑했다.
목걸이 뒤편에는 계약 날짜가 명시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은 이를 보고 일부러 교장실이나 행정실을 지나다니며 "긍정쌤이 오고 나서 수업이 너무 재밌어" 하며 내 칭찬을 해줬다. 그 덕분인지 나는 올해도 재계약을 하게 되었고 내 목표는 작년의 나보다 더 잘 해내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여파로 개학은 계속 연기되었고 당시 나는 학교와 공공기관만 계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 강사들은 신학기 전인 2월에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정부에서는 2주씩 찔끔찔끔 연기하며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에 섣불리 다른 사기업과 계약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나는 리포터가 없어졌던 것처럼 앞으로는 온라인의 인기 강사만 살아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쌍방향 소통이 필요 없는 이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충분히 대체될 수 있었다.
이력서의 경력 칸이 프로젝트로만 구성되는 것도, 그래서 일일이 내가 뭘 했는지 늘 증명해야 하는 것도,
연말정산 대신 복잡하게 세금 계산하는 것도, 내년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을 하면 할수록 불안한 것도
이제.. 그냥 다 그만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오롯이 혼자 고민하고 책임지는 것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목걸이를 내려놓게 되었다.
코드스테이츠의 PM 부트캠프에 참가하면서 매주 배운 것과 나의 생각을 브런치에 글로 남기고 있고
오늘은 평소에 챙겨주시는 강사님 말고 다른 분께서 글이 너무 잘 읽혀 좋다며 피드백을 남겨주셨는데
그 한 줄에 큰 위안을 받았다. 오늘 감성이 센치해서 더 크게 와 닿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새로운 시작에 늘 불안해하고 요동치던 나의 마음에 비로소 평화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어디서 어떤 자격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나다.
맡은 일은 꼼꼼하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며, 내 모든 창의력을 이끌어내 나답게 일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지난날의 나와 내가 사랑했던 일들을 마음 한 켠에서 온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거의 뭐 죽고 못 살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만큼 마음이 아리고 심장이 시리다 ㅠㅋㅋㅋㅋ
잘 가, 나의 첫 목걸이.
덕분에 행복했고 많이 성장했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