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이해하려면 ‘내’가 들어주는게 먼저다
우리가 언어를 배울 때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배운다. 말하기는 쓰기와 비슷하고, 듣기는 읽기와 비슷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말하는 과정은 쓰는 과정과 비슷한데,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우선, 우리가 말하고 싶은 개념, 무형의 표상이 있고, 그것에 대응되는 언어, 단어가 있다. 우리는 그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함으로써 말하기가 완성된다. 쓰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화를 길게 이어가 보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표상과 언어 사이이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를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반대로, 듣는 과정에서는 청각을 통해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언어로 이해한 다음, 표상으로 연결한다. 듣는 과정 역시 대화가 길어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최근 ’문해력‘이라는 화두가 떠오른 근간에도 이러한 사실이 깔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평소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였는지? 내가 들은 언어가 상대방이 말하고자 한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깔끔한 소통이 가능하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이러한 것들에서 가장많은 communication miss가 발생한다.
읽고 쓰는 것은 약간의 사고과정이 필요하지만, 말하기와 듣기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말하기와 듣기에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듣기의 경지는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실 듣기. 상대방이 말한 표상을 있는 그대로 decoding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의도 듣기. 표상을 넘어서 맥락을 파악하여 보다 종합적인 이해를 한다. 세 번째는, 존재 듣기. 사실과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상대방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는 경청의 경지이다. 우리는 평소에 어떤 수준의 듣기를 활용하는지, 어느 경우에 가장 깊숙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