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옥상의 민들레꽃>
박완서 단편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은 화려한 아파트 단지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화와 인간 심리를 날카롭게 비춘다.
집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자산과 신분의 상징이 된 시대, 아파트 가격은 주민들의 자부심과 직결되고, 그 이미지를 지키는 일은 생명보다 앞설 때도 있다. 이 소설의 투신 사건 역시, 한 개인의 절망보다 ‘단지의 이미지’와 ‘시세 하락’이 먼저 걱정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궁전 아파트. 이름처럼 완벽한 시설을 갖춘 이상적인 단지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나무 그늘이 드리운 산책로, 연못과 정자, 대형 슈퍼까지 외관만 보면 부러움이 절로 난다. 주민들 스스로도 이곳에서 산다는 사실을 성공의 증거로 여긴다. 그러나 행복의 토대가 외부 시선에만 기대면, 그 화려함은 쉽게 금이 간다. 두 번의 투신 사건은 이 단지를 지탱하던 허상을 무너뜨리고, 감춰졌던 불안을 드러낸다.
사건 이후 열린 대책 회의는 표면적으로는 ‘생명 보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회의의 흐름은 실질적인 안전보다 ‘어떻게 보일지’에 집중된다. 쇠창살이 감옥처럼 보이지 않을까, 자물쇠가 경관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우선이다. 명함에 새길만한 그럴듯한 단체 이름을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모습은, 현실 속 부동산·아파트 문화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국문학 속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번지르르한 직함과 겉치레 뒤에, 진정으로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은 희박하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어린 화자가 있다. 어버이날, 서툰 손으로 만든 종이꽃은 식탁 한쪽으로 밀려나고 곧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형과 누나의 선물은 환영받지만, 자신은 그 자리에 없는 듯하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어머니의 말 — “막내만 아니면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 가 아이의 존재를 송두리째 흔든다. 그 말은 집이라는 공간을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가 아닌, 숨 막히는 경계로 바꿔버린다.
밤이 되어 옥상으로 향한 아이는 시멘트 틈새에 피어난 작은 민들레를 발견한다. 흙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자리에서 바람과 비를 견디며 피어난 노란 꽃은, 한국 현대문학 속에서도 보기 드문 강한 생명력의 상징처럼 선명하다. 그 빛은 아이의 마음속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고, 극단적인 생각은 힘을 잃는다. 결국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가족의 눈물이 그를 맞이한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쇠창살이 아니라 관계이며, 생명을 붙드는 것은 방범 장치가 아니라 의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민들레는 바람을 타고 흘러와 작은 틈을 집으로 삼는다. 조건이 나쁘더라도, 조금씩 자라 결국 꽃을 피운다. 이는 부동산 가치나 외관 관리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진짜 울타리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옥상의 민들레꽃』은 단편소설이 지닌 짧지만 깊은 힘으로, 사회비판과 인간 이해를 동시에 담아낸다.
책장을 덮으면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 옥상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는지, 그리고 오늘 나는 누구에게 노란 씨앗을 건넬 수 있는지를. 이 질문이 오래 남는 한, 이 작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긴 서평과 관련 책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겨 두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gina_booklover/223970095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