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이해인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손가락으로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따라 그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그 문장이 더 깊숙이 들어올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재는 방식이 자꾸만 '얼마나 가까운가'에서 '얼마나 진실한가'로 옮겨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과도 쉽게 어긋난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을 수십 번 스쳐 지나간다.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를 하면서도 서로를 놓친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일까. 시인은 “다정한 친구이기보다는 진실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잠시 멈춘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다정함만 남기고, 말하지 않은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은 말만 건네는 것. 상대가 기뻐할 만한 말을 고르는 것. 그것들이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한 친구는 다르다. 진실한 친구는 때로 불편한 말을 건네고, 말이 상처가 되더라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말한다. 침묵하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기보다 그 사람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렇기에 진실은 다정함보다 더 무겁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주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대칭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를 변화시키지도 너의 삶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너와의 만남 자체는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그 만남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자꾸 관계의 성과를 재려고 한다.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얼마나 변화를 주었는가. 하지만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한다는 것,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양분이다.
시인은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고 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만남은 영원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고 거리가 멀어지고 서로의 삶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고 나도 누군가를 떠난다. 슬픈 일이지만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유한한 시간 동안 어떻게 만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최근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오래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끝없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그 옆에 있음으로 충분했거나 그것이 가장 진실한 방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말이 모든 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때로는 침묵이 더 진실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진실하다.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이 문장은 관계의 변화를 나타낸다.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 개인에서 공동으로의 전환.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상처로. 그 속에서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자신을 덜어내는 일이다. 자신의 우월함을 내려놓는 일이다. 상대를 내 조건에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현실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고 말하는 듯 하다. 현실은 변한다. 사계절처럼 우리의 감정도 변한다. 관계도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지키고 싶다는 것은 아름다운 바람이다. 하지만 더 현실적이고 더 진실한 방식은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변화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변화 속에서 상대를 계속 바라보는 것. 변하는 상대를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아닐까.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이 표현의 역설이 나를 다시 한 번 멈추게 한다. 좋고 싫음의 일반화는 거짓이다. 그런데 너는 그 거짓 속에서 예외가 된다. 너는 내가 일반적으로 싫어하는 것들의 범주 밖에 있다. 너는 나에게만 특별하다. 이것은 가장 개인적인 사랑의 선언이다. 세상을 등지고 너 하나만 선택하는 것. 그것은 낭만적이지만 또한 위험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사람을 택했을 때, 그 사람을 잃는다면?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택한다. 누군가를 위해 전부를 걸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덜 외로워진다. 나는 그런 만남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결국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하늘이 될 수 없다. 누군가의 향기가 될 수 없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며. 때로는 불편한 말도 건네면서. 함께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누군가에게 띄우는 글이 무엇일까. 그것은 너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세상의 누구와도 다른 너를 위해 건네는 말이다. 이 글도 그렇다. 이 글을 읽는 너에게. 너에게만 띄우는 글이다. 너와의 만남이 내 삶을 변화시켰다는 그 말을. 너는 나에게 영원한 친구이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진실하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