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회, 사회 안의 나

에필로그

by 지나
ChatGPT Image 2026년 2월 4일 오전 10_31_44.png 창가 앞에 서서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과 비어 있는 의자


사람들 사이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나는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가늠하게 된다. 한 걸음 앞에 있는 듯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방향이 어긋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분명히 내 선택이라고 여겼던 장면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말과 기대 위에 놓여 있었음을 뒤늦게 떠올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생각과 바깥의 기준이 어디에서부터 겹쳐 있었는지, 그 경계를 천천히 더듬는다.


우리는 사회를 흔히 바깥에 둔다. 제도와 규칙, 관계와 역할처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로 묶어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면, 사회는 늘 내 안에서 먼저 작동한다.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누는 기준, 웃어 넘길지 아니면 그대로 두기로 할지를 결정하는 순간,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선택 같은 것들. 그런 판단들이 겹쳐지며 나라는 사람의 태도가 만들어지고, 그 태도는 다시 사회 속에서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이 매거진을 쓰는 동안, 문장은 늘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은지를 오래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개인적인 방향으로 기울지는 않는지, 혹은 안전한 말들만 골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길었다. 그 망설임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끝내 명확한 답으로 남지도 않았다. 다만 그 시간을 지나오며, 망설임 역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말을 요구한다. 입장을 밝히라는 요청,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기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드러내라는 질문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그 흐름 속에서 내 안의 나는 종종 한 박자 늦는다. 아직 말로 옮겨지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고, 문장으로 정리되는 순간 다른 의미가 덧붙여질 것 같은 생각들이 있어서다. 그래서 나는 말을 미루는 쪽을 택해왔고, 그 선택은 때로 오해를 남겼다. 하지만 그 시간은 비어 있지 않았다. 생각이 흘러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방식이었다.


사회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에는 사회의 언어가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또 다른 날에는 내가 사회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 나만의 속도를 설명하려 애쓴다. 그 이동은 늘 매끄럽지 않았고, 어색함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왕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왔다. 단단한 확신이라기보다는, 쉽게 나를 밀어내지 않는 편이다.


내 안의 사회는 안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질문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려는 쪽에 서 있다. 사회 안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무너지는 자리에도 서 있지 않다. 흔들리는 상태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편이다.


차분히 글을 쓰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사회는 나를 규정하는 거대한 틀이기보다, 내가 매일 선택하고 조정해 온 작은 태도들의 집합에 더 가깝다. 내가 어떤 말에 머무르고, 어떤 장면을 그냥 지나치는지에 따라 사회는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지키지도, 완전히 내려놓지도 않은 채 움직여 왔다.


에필로그를 쓰는 지금, 이 기록들이 어떤 결론에 닿아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들이 하나의 위치처럼 남아 있기를 바란다. 너무 가까워 부담스럽지도, 너무 멀어 닿지 않지도 않은 거리에서. 내 안의 사회가 나를 몰아붙이지 않도록, 사회 안의 내가 나를 놓치지 않도록.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내 속도를 가늠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조용히 확인한다.


keyword
이전 29화다시 사람을 믿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