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감정과 미뤄둔 판단이 쌓이는 방식에 대하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이불 가장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시간이 있다. 몸은 이미 깨어 있지만 마음은 아직 어제의 시간에 걸려 있는 상태다. 창밖의 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방 안의 공기가 밤과 아침 사이에서 방향을 정할 때까지, 나는 그 중간에 머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가지 일이 진행된다. 오늘은 말을 아껴야 할지, 평소처럼 흘려보낼 수 있을지, 어제 남겨둔 감정을 다시 꺼내야 할지 같은 판단들이 차례 없이 떠오른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작은 사회가 하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질서, 반복되는 방식, 쉽게 바뀌지 않는 관성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사회다. 어떤 말에는 오래 반응하고, 어떤 상황에는 유난히 무덤덤해지는 태도도 그 사회의 규칙에 가깝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뒤로 밀리고, 말로 옮기기 쉬운 감정만 먼저 나오는 구조 역시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온 내부의 합의처럼 느껴진다.
이 사회는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하루를 운영한다. 피로가 쌓인 날에는 판단이 예민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사소한 장면에도 의미를 덧붙이게 된다. 관계에서 어떤 말을 삼키고 어떤 말을 꺼내는지도 그날의 내부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책임자에 가깝다. 하지만 늘 능숙하게 관리하지는 못한다. 외부의 자극이 많아질수록 이 작은 사회는 쉽게 과밀해진다.
뉴스에서 반복되는 불안한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지친 목소리, 해결되지 않은 일정과 미뤄둔 결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내부의 질서는 금세 흔들린다. 그럴 때 판단은 빨라지고, 감정은 거칠어진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말에 오래 걸려 넘어지고,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불러와 곱씹는다. 이 사회가 지금 과속하고 있다는 신호는 대개 그런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바로 답하지 않아도 되는 메시지는 잠시 두고, 결론을 요구하는 질문 앞에서는 시간을 벌어 둔다. 감정이 먼저 나서지 않도록 한 박자 늦추는 일은 회피가 아니라 조정에 가깝다. 지금의 내부 상황으로는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이 사회를 더 소란스럽게 만들 것 같을 때, 나는 회의를 연기하듯 판단을 미룬다.
관계에서도 이 작은 사회의 성향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상대의 말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잠시 지켜보는 시간이 생긴다. 그 짧은 간격 덕분에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들고, 말의 온도도 달라진다. 나라는 사회가 어떤 언어를 허용하고 어떤 감정을 잠시 보류하는지에 따라 관계의 결 역시 달라진다. 이는 배려라기보다,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사회라는 말은 흔히 개인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제도와 구조, 다수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방향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결국 한 사람의 하루다. 무엇에 익숙해지고,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부당한 상황 앞에서 침묵을 택하는 순간과, 굳이 말을 꺼내지 않기로 결정하는 장면들. 그런 선택들이 쌓여 개인의 태도가 되고, 다시 사회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꾼다.
나는 나라는 작은 사회가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사회가 어떤 규칙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기준이 여전히 유효한지, 이미 필요하지 않은 질서가 관성처럼 남아 있는지는 가끔 점검해 보고 싶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은 어떤 감정이 가장 많이 발언했는지, 어떤 목소리가 끝내 말해지지 않았는지를 떠올려보는 일은 그 점검의 한 방식이다.
요즘처럼 모두가 빠르게 판단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받는 환경에서는, 내부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나라는 사회가 늘 외부의 기준에만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부의 균형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끝에서 다시 한 번 내 안을 살핀다. 오늘 이 사회는 너무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는지, 누군가의 감정이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사회는 언제나 거대한 변화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하루를 다루는 방식, 감정을 처리하는 속도, 말을 고르는 습관 같은 작은 선택들이 모여 방향을 만든다. 그 시작점은 늘 개인이고, 그 개인은 다시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내 안을 정리한다.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소한 스스로를 소모하지 않도록.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사회적 태도는, 그렇게 하루를 견디는 방식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