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다름’에 대하여 어릴 적 나는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질문보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안전했고, ‘어딘가 이상하다’는 감각은 되도록이면 조용히 접어 두는 게 어른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점점,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남들이 원하는 것 (사회가 바라는 것)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버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익숙한 대답들 속에서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오래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온 것은 아닐까?
『데미안』은 그런 질문을 다시 꺼내오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오래 마음에 남은 건, 카인의 표적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성경 속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배워왔다. 카인은 아벨을 죽인 죄인이고, 하느님은 그를 벌하여 ‘표적’을 남겼다. 그 표적은 마치 낙인처럼, 카인이 어디를 가든 죄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런데 데미안은 이 이야기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말한다.
카인은 죄인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였고, 그의 이마에 새겨진 표적은 낙인이 아니라 ‘힘의 흔적’이었다. 카인은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감지했기 때문에 그를 피했고, 두려워했고, 외면했다는 것이다.
“그를 죽이지 못한 건 그의 힘 때문이었어. 그 힘이 두려웠던 거야.”
그 순간, 낯익은 도덕적 이야기가 낯선 존재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표적은 더 이상 ‘죄의 징표’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새겨지는 낯선 빛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을 같은 기준에 맞추어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 적당히 맞춰주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자신의 의견과 다를 지라도 믿으려 애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반대로 말과 생각이 독특하고, 정해진 틀을 거부하거나 남들과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한 사람은 ‘유별나다’, ‘이상하다’, 더 나아가 ‘또라이 같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스스로 다르다는 걸 감지한 이들에게 침묵하거나 순응하라고 말한다.
“좀 조용히 살아.”
“그러다 외톨이 된다.”
이런 말은 조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꺾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우리는 그 사람이 정말 자신만의 빛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미리 꺼버리게 된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표적을 가진 사람들’은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답보다 질문을 더 오래 붙든다. 주어진 삶에 침묵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이들이 고립되는 건 무리 속에서 어울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다름을 껴안을 수 없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거리일 때가 많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사람들—즉 ‘또라이’, ‘이상한 애’라 불렸던 이들이 세상의 관점을 바꾸고, 질서를 새롭게 그리며, 무엇보다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곤 했다.
스티브 잡스, 반 고흐, 프레디 머큐리.
그들은 처음엔 모두 낯설었고,
불편했고,
때로는 거칠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표적’은 삶을 비껴간 상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끝내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 흔적은, 무리 속에 섞이기를 거부하며 생긴 틈이며, 자기만의 언어를 갖기까지 걸어야 했던 외로움의 궤적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 쉽게 판단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들이 걸어가는 길의 밀도를 상상해봐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나를 설명하고 있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누군가의 기대 속에 있는가,
아니면 아직 말하지 못한 내 안의 어딘가에 있는가?
『데미안』은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 표적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물음 앞에서 피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