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듣자며 소음 뿌리는 사람들

원치 않는 소리로 방해받는 일상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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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산책하고 싶었다.
바람이 솔솔 불고,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닿는 그런 날.
그게 다였다.
그렇게만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트로트 한 곡에 무너졌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처음엔 근처에서 라디오를 켜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내 바로 옆을 스쳐갔다.

작은 라디오를 손에 들고,
혹은 스마트폰 스피커를 빵빵하게 울리며,
아주 당당하게 트로트를 틀고 걸어가는 분.


그 길은 마치 본인만의 전용 산책로인 듯했다.
그 코스를 나도 걷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손님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런 경우는 트로트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 뉴스도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큰 소리로 들려주는 뉴스."
정치 토론, 경제 이슈, 시사 프로그램까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분 덕분에 강제로 뉴스를 복습하게 된다.

유튜브도 빼놓을 수 없다.
목사님의 설교, 심지어 어떤 분은 어린이 동요를 틀어놓고 걷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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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는 공원의 고요를 깨며,
내 귀에, 내 기분에, 조용히 피해를 주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있다.
그걸 쓰면 더 정확하게, 더 좋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분들은 굳이 바깥으로 소리를 흘린다.
왜 그럴까?


나는 이해하려 했다.
혹시 귀가 안 좋으신가?
이어폰을 쓰면 답답한가?
배터리가 없나?
그럴 수 있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배려 하나 없이
소리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그저 습관, 혹은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구처럼 느껴지곤 했다.


심지어 어느 날,
시끄러우니 조용히 틀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모두 같이 알았으면 좋겠어서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어찌나 당당하고 자연스럽던지,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왜 강제로 듣게 만들지?

그것이 음악이든, 뉴스든, 설교든, 유튜브든,
취향이든 정보든, 신념이든,
왜 남의 귀에까지 억지로 들이밀려고 하는 걸까?


나는 생각한다.
이건 단순한 무신경함을 넘어서,
자신이 누리는 걸 남도 누려야 한다는 착각,
혹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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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틀고,
그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 집중하지만,
그 집중의 결과물은 타인의 귀를 마구 두드린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려주는 것,
그것은 공해다.
소리의 공해, 기분의 공해, 매너의 공해.


나는 애써 이해하려 했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고,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습관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너무 자주 마주치는 그들의 당당함에,
나는 결국, 이번에도
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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