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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라르 Dec 31. 2023

슬픔의 상식

<이방인>...왜 자꾸 날 이상하게 해석함?

 공감받지 못할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 까닭은 많은 사람이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이 감정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공감을 통해 알 수 있어서다.  공감받지 못해 생기는 분노는 서로움과 연관되어 있는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강하다.  나와 관계가 없던 사람의 무뚝뚝함보다 내편일 것 같던 사람의 무뚝뚝함이 아프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공감하지 못해?', '너 T야?'  같은 말은 서로움의 분노다. 가까울수록 공감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쉽게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마음이 가진 물리법칙이다.


 당연히 공감해야 는 때가 있다. 부모의 죽음에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 그렇다. 슬픈 모습을 안 보이고, 평소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와 관계없는 사람도 분노한다. (적어도 경계대상은 된다) 당연히 슬퍼야 할 때와 기뻐야 할 때가 있고, 최소한 슬프거나 기쁘지 않더라도 겉으로 표현해야 미움받지 않는다. 어떤 살인 사건에서, 사건과 관계없이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았다고 가벼운 징역형을 받을 처지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설 속 인물이 있다.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다.


무뚝뚝함에 가려진 진심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별일 아닌 듯 보인다. 첫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뫼르소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만큼 무뚝뚝하다.  어머니 시신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관리인의 말에 안 보겠다 답변하고, 의아한 표정을 관리인을 보고 왜요? 라 답한다. 그의 무뚝뚝함은 그를 이해하기 힘들어하거나 불편해질 정도다.


 뫼르소에게 오랫동안 떨어져 연락이 소원했던 어머니였고, 양로원에서 받은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의 짧은 전보 한 통으로 사망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뫼르소는 타인의 기대를 상식을 위해 거짓으로 슬퍼할 수 없는 인물이다.  뫼르소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머니가 없는 집을 넓다고 느낀다거나, 키우던 개가 사려져 슬퍼하는 이웃을 보고 어머니를 떠오른다. 표현되지 않아 주변사람은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어머니 죽음에 대해 공허함을 느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어머니의 죽음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알면 소설의 첫 문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고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이런 뫼르소에게 중요한 사건이 터진다. 바로 살인 사건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레몽은 여자친구와 싸운다. 감정이 격해진 레몽은 급기야 여자친구를 때렸다. 레몽의 여자친구는 복수를 위해 오빠를 부르고, 이 사실을 안 레몽은 총을 든다. 뫼르소는 위험한 일이 생기면 자신이 쏘겠다 말하며 레몽의 총을 맡게 된다. 복수를 위해 달려온 남자는 뫼르소를 향해 칼을 들고 위협한다. 그 위협에도 총을 쏘겠단 생각은 없었지만, 그날은 유독 태양이 뜨거운 날이었다.

이마 위에서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그리고 내 앞의 칼에서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쥐어뜯고 고통스러운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가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하늘 전체가 갈라지면서 불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전 존재가 팽팽하게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꼭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날카롭고도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진실만으로 만들어진 거짓


 뫼르소는 살인 혐의로 재판받게 된다. 뫼르소의 무뚝뚝한 태도는 배심원, 검사, 판사에 이르기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왜 살인을 했냐는 질문에는 '태양이 뜨거워서 그렇다'라 말했다. 뫼르소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태양이 뜨거워 저지른 살인을 이해시킬 수도 없었다. 사건 담당 검사는 어머니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태도를 파헤친다.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것, 다음날 해변에 가서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한 것, 어머니의 시신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 재판에서 밝혀 진다. 살인과 관련 없는 그의 평소 태도에 배심원에 판사까지 분노했다. 이제는 살인에 대한 사실확인 보다 뫼르소의 태도를 심판하는 재판이 된다. 결국 우발적 살인과 당시 아랍인을 죽여도 사형 선고는 받지 않는 사회였음에도,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며 소설은 끝맺는다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것, 다음날 해변에 가서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한 것, 어머니의 시신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은 진실이지만 상식은 진실만으로도 거짓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상식은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것이다.


슬픔의 상식


 감정은 자기를 초라하게 만들 때가 있다. 슬플 때가 그렇다. 이 초라함을 달래는데 많이 사용하는 위로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 모두가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슬프고, 언젠가 겪을 일을 알면 조금은 위로된다. 슬픔의 상식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뫼르소처럼 어머니와 관계가 가깝지 않아 눈물을 안 흘릴 수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가 '나만 그래서는 안 된다'되지 않도록


 '당연히'라는 '상식'으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 잦다. 모두가 다른 존재이기에 공감의 방식은 다를 것이다. '나만 그래서는 안 된다'로 감정위로를 타인을 내리는 것으로 푸는 것은 옳지 않다. 타인이 같이 슬퍼지 않더라도 어렵지만 내 슬픔은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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