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
2023년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바로 'Chat GPT'이다. 개발로 밥을 먹는 나에게 Chat GPT의 등장은 염려스러운 일이었다. '나 이제 뭐해먹고 사나' 금방 개발자를 대신하겠구나 싶었다. 실상은 걱정이 부끄러울 정도로 Chat GPT로 잘 활용하여 코딩중이다. 걱정에 대부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직업적으로 걱정했지만, AI가 사람처럼 공감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걱정하는 분도 많았다. 실제 Chat GPT만 보더라도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다.
위의 이미지처럼 GPT는 실제 사람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관련된 상황을 이해해서 대화할 뿐이다. 그런데도 대화가 된다. 사람도 타인의 감정을 진심으로 느끼기 어려운데, 타인의 감정을 못 느끼면 좀 어떤가. 기계와 인간사이에 간극에도 이해하려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 내겐 충분하다.
사람은 나와 동일시되는 경험에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겪은 감정과 매우 유사하여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에는 함부로 공감할 수 없다. 또 그래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내가 유추한 감정과 당사자의 감정은 다를 수 있는데, 으레 짐작하다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우러러 나오는 공감도 필요하겠지만, 의사가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듯이 논리의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공감도 필요하다. Chat GPT의 대화를 다시보면, 사람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은 잘 이해한다. 공감능력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동안 배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인에 감정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부족하더라도 도와줄 것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상대가 가진 문제를 묻는다. 이것이 불안정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인간에게 어려운 소통이 아닐까.
"나 우울해서 화분 샀어"라는 질문에 '무슨 화분을 샀어?'라고 답한다면 공감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에 가깝고, '우울해? 무슨 일 있어?'라고 답하면 이성보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이라 한다. 이 질문은 공감능력 테스트로 왕왕 사용되었으나, 이제 질문의 의도가 널리 퍼져 실제 테스트에 사용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AI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나 : 우울해서 화분 샀어
AI : 화분은 인테리어나 좋은 공기에 좋습니다. 어떤 화분을 샀어요?
다시 질문했다.
나 : 내 말의 방점은 화분이 아니라 우울한 거야. 너 바보야?
AI :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질문을 잘 못 이해했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우울한가요? 도와줄 수 있으면 돕겠습니다.
바보라고 욕해도 화내지 않는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가히 부처의 경지다. 높은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은 왜 우울한지 바로 답할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은 AI처럼 답했을 것이다. 우울해서 화분을 산 경험이 없고, 어떤 화분을 샀길래 우울함에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때로는 이런 나의 태도가 공감능력이 낮은 사람이 되어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감정을 자제하고 이성을 강요한다. 이성을 추구해야 어른이고, 어른이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성적 결과를 보여준 AI에게는 감정을 못 느낀다고 비난한다. 이 사실만 봐도 우리는 소중한 것을 외면한 채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감정이며, 궁극이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최후의 존재적 보루다. 감정이 존중받아야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우울함을 공감받지 못하여 생긴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웃음이 나는지 알기는 힘든 게 감정이지만, 슬프게도 내 감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어른이라면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 "우울해서 화분 샀어"는 "나 요즘 우울해. 화분을 사면 이 우울함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샀어"로 되면 좋겠다.사실 우울하다면 "나 우울해"라 말해도 아주 충분하다.
AI와 잘 소통하도록 프롬프트를 만드는 직업도 생겼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라 부른다. 지금 각광받는다고 하는데, 이 직업이 하는 일을 자세히 모르지만, 매일 사용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Chat GPT는 프롬프트 할 것 없이 일상 대화만으로 충분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도 한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프롬프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생겨나는 이유는 뭘까? 그 까닭은 우리 대화 바탕에 병들어 있어서 대화자체를 힘겨워해서다. 인종, 성별, 종교, 정치와 같은 이유로 혐오감정을어디서든 볼 수 있는 지경임에도 프롬프트를 살피는 일이 중요할까. 먹고사는 일이 중하여 너도나도 AI에 대화하는 법을 중요시하는 걸 탓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경험이 커뮤니케이션을 돌이켜 보는 경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