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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원 Mar 15. 2024

나는 바람피우지 않는 사람일까?

<헤어질 결심>... 그거 막장 불륜영화 아닌가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칸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수작이다. 내용은 이렇다.


  부산경찰서 강력팀 소속 해준(박해일)은 최연소 경감 타이틀을 가진 엘리트 경찰이다. 해준과 아내 정안(이정현)은 주말부부다. 정안은 주말부부가 이혼율이 높으니 일주일에 한 번 잠자리를 가져야 결혼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는 의무적으로 잠자리를 한다. 애틋하고 설레는 장면을 볼 수 없었지만,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해준이 맡은 사건 중 '구소산 사망 사건'은 60년대생의 한 남성이 산 정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해준은 시체 검안실에서 사망한 남성을 조사한다. 검안실에 서래(탕웨이)가 등장한다. 서래는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이지만, 한국어를 꽤 해서 약간의 번역기 도움으로도 소통할 수 있었다. 이 둘은 조사를 위해 여러 번 만나게 되어 서로에게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 서로의 결핍을 채울 존재임을 알아간다. 마침내 해준은서래가 구소산 사망사건의 용의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서래에 관련한 사건자료를 지우고나서야 이 사건이 서래가 죽인 살인사건임을 알게 된다.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헤어질 결심>, 서래가 범인인걸 알게 된 후 서래를 향한 해준의 대사


 구소산 사건은 서래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며 자살로 종결된다. 진실은 알게 되었지만 증거는 없고, 사랑만 남은 범인 서래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스스로 붕괴되었다고 말한 해준이 서래를 두고  아내가 있는 근무지로 떠나며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A33AdB4u8GQ

 


 <헤어질 결심>은 불륜임에도 불륜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신비롭고 애틋한 사랑 영화로 보였다.  이 불륜을 미화한 영화라고 바판하는 말도 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미화가 아니라 불륜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만들어 냈다. 현실에서 바람은 (적어도 당사자들에게는)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들의 불륜은 낭만적이고,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게 하는 환상 같은 마법이다. 때로는 마법이 너무 강하여 주위 사람만이 현실을 볼 수도 있다. 자기 연인을 두고 다른 연인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아름답게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현실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추후의 문제다.


 어릴 적, 미디어와 어른들의 말을 통해 바람은 나쁜 것으로 묘사되어 절대 안 되는 규칙이 되었다. '바람피우는 사람은 나쁜 사람', '나는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바람이 나쁜 것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더 이상 나를 절대 바람피우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저 사람들보다 내가 특별해서 결백한 것이 아니다. 그럴 상황이 찾아오지 않았을 뿐, 언제라도 저들처럼 자기 연인을 두고 다른 이성을 찾아갈 수 있다. 여전히 매력적인 이성에게 호감이 생긴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 나를 쓰레기라고 한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


 다른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바람은 피우고 싶지는 않다. 다른 이성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니 바람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옹졸은 사양이다. 배우자가 슬퍼하는 것이 싫고,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 싫다. 바람피울 수 있는 나를 발견했지만, 바람 안 피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지금 조심할 때구나." 내 마음을 경계하고 그 이성을 멀리하는 노력이다. 실제 상황에서는 그러지 못할까 봐 조금 겁이 난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과 서래의 애틋한 장면을 볼 때마다 '불륜 장면인데...', '해준아 그러지 마...' 생각했다. 불편했다. 그러나 이런 불편을 느낀 내가 싫지 않았다. '나도 불륜적 상황에 놓일 때, 경계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이 불편함이 나의 이정표였던 것이다. 옳은 것을 위한 불편은 때로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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