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경원 Mar 04. 2024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없지만

<이처럼 사소한 것들>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살며 석탄을 나르는 일을 한다. 강 건너 언덕에 있는 수녀원에도 석탄을 배달했다. 수녀원은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녔다. '그곳은 여학교를 운영 중인데, 여기 학생들은 알려진 것처럼 학생이 아니라 타락하여 교화 중이다.', '그곳은 모자 보호소로 가난한 집의 미혼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그곳에 보내 숨기고, 부유한 집에 입양시켜 많은 돈을 번다. 그게 수녀원의 사업이다.' 펄롱은 어차피 소문의 반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항간의 소문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날 약속 시간보다 일찍 수녀원에 갔는데, 분위기가 무언가 이상했다.


 그 안에서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 여남은 명이...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었다. 여자들은 펄롱을 보자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놀랐다. 그저 카멜 수녀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러 왔을 뿐인데? 그들 중에 신발을 신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검은 양말에 끔찍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아이는 눈에 흉측한 다래끼가 났고 또 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누군가 눈먼 사람이 커다란 가위로 벤 것처럼 엉망으로 깎여 있었다. 그 아이가 펄롱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중에서 p50~51


아 이는 일하다 죽을 때까지 펄롱의 집에서 일하겠다 말했다. 그러니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펄롱은 지켜야 할 일상이 있다. 아내와 다섯 딸을 보살펴야한다. 오늘 처음 본 아이를 데려갈 수 없었다. 집에 온 펄롱은 고민했다. 애써 외면을 하여 가족과의 일상을 지키는가, 내가 아니면 도움을 받기 힘든 아이를 향해 손을 뻗는가. 펄롱은 무엇하나 쉽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힘겨운 고민이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꽤나 인간적였다. 펄롱과 같이 불의에 어긋난 일을 마주할 때 겪는 고난이 있다. 이 고난은 선택을 강요받아 생긴다. 나서는 순간 책임자가 되어 수고를 해야 된다.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방관자가 되니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상을 보낸다. 어떤 선택을 해도 일상을 지킬 방도 따위는 없으며 이것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겪을 처지다.


 물론 죄책감 없이 살아가며 일상을 지킬 수 있다. '내가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어쩌라고', '어차피 다른 사람 모른 채 하는데?' 이렇게 합리화하며 말이다. 다행히 펄롱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 또한 부끄러운 사람이지만, 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런 태도는 경계한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소설과 같은 상황이 분명 있다. 바로 고칠 문제다. 분명 고쳐야 할 문제이지만, 직접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고 싶지 않다. 보고 싶지도 않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겪을 처지가 싫다. 일상을 무너트리고 싶지 않다. 옹졸하기 짝이 없기에 방관자가 된 누군가를 보아도 내게는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라면 용기 내서 아이에게 손을 뻗었을까? 그렇다!라고 말하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게 아닐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조금, 아주 조금 스스로의 변호를 하자면, 내게 정의감은 부족하더라도 죄책감은 있다. 이것을 변호라고 하는 까닭은 죄책감 때문에 무조건 올바른 길을 걷는 것도 아니지만, 나쁜 길을 선택하면 괴로워는 해서다. 내가 '선'을 행한다면 타고난 윤리적 마음 또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분명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펄롱과 같은 상황을 겪을 때, 행동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괴로워는 하지 않을까. 괴로워하는 것이 나의 작은 위안이다.


 펄롱이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처럼 묘사되었다면 감흥이 없을 것 같다. 고민 없이 추진력 있게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인물은 내게 아주 대단한 사람이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물론 펄롱은 나보다 대단한 사람임은 맞다). 펄롱이 괴로운 고민을 해서 고맙다. 나의 이기심이 위로받았다.


 모두가 타고난 영웅은 될 수 없지만, 누구나 인간적인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펄롱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웅보다 인간적이다) 펄롱은 법 지식이 깊은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런 경험을 무수히 겪은 노련한 이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다. 모두가 영웅은 될 수 없지만 펄롱 같은 보통의 사람이 올바른 용기를 보였을 때, 이에 동조된 주위 사람들이 연대하여 영웅 같은 서사는 만들 수 있을 거라 본다. 영웅적 선택은 할 수 없더라도, 누군가의 용기에 감사하며 도움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이전 09화 이토록 다정한 존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