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0 마이너리그 싱글 A - 피오리아 치프스
★독립리그부터 MLB까지 - 미국 프로야구 완전 정복기★
- 프롤로그
- 메이저리그-응원 문화 없이 뜨거운 야구 열기에 놀라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마이너리그의 고통을 알고 가야 합니다. 마이너 없는 메이저는 없습니다. 제2의 박찬호는 꿈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 2005.05.17 '눈물밥' 먹어야 메이저리거 된다 (주간동아)
1994년 박찬호의 대성공 이후 29년간 53명의 고등학생·대학생 선수가 미국으로 직행했다(독립구단 진출, 현역 입대 등 공백기 가진 선수 제외). 이들 중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한 선수는 12명이며, 26명의 선수가 더블A 무대조차 밟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은퇴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선수들이 좌절을 겪었던 레벨의 마이너리그는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의 리그인 싱글A였다(16명).
2022년 6월 중순에 마이너리그 더블 A 경기를 직관한 이후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비현실적인 MLB 30개 구장 투어 대신 싱글A부터 트리플A까지 전부 보고 오자'는 다짐을 했다. 한국은 물론 현지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마이너리그에 대한 호기심이 큰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스프링필드에서의 시간이 너무 좋은 경험으로 남아버린 탓이었다. 만약 스프링필드 대신 피오리아에 먼저 들렀다면 '독립리그부터 MLB까지' 시리즈를 포스팅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빅리그 경기는 어디서 진행하든 <MLB.COM> 사이트에서 티켓을 예매한 뒤 Ballpark 어플리케이션에 전자 티켓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마이너리그 역시 MLB와 같은 티켓 예매 플랫폼(Ticketmaster)과 제휴가 되어 있는 리그라면 간편하게 전자 티켓 발급이 가능하다.
싱글A는 그런 거 없었다. 경기를 예매할 때 기입한 이메일로 티켓의 PDF 파일이 날아온다. 이걸 프린트하든 휴대전화에 저장하든 해서 게이트 앞 매표원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피오리아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프린트해서 가지고 갔지만, 바코드 리더기가 인식을 못 하는 바람에 즉석에서 PDF 파일을 받아야만 했다.
피오리아 치프스의 연고 도시인 일라노이주 피오리아는 2020년 기준 약 11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피오리아는 옥수수·대두·가축을 생산하는 대규모 농업 지역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조업이 주된 산업이나 2010년대 중후반 들어 여러 회사의 본사가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중이라 한다. 미래가 불투명한 군소 도시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시즌 시작하면 시골동네에 가니까 먹는 것도 많지 않았다. 외국선수들과 한 집에서 3-4명 같이 살았다. 차도 없어서 마트 갈 때도 빌려 탔다. 먹는 것도, 의사소통이나 생활도 어려웠다. - 2018.01.30 [오!쎈 인터뷰] '중고신인' 김선기가 말하는 #넥센지명 #미국도전 #상무 (OSEN)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마이너리그 더블A 팀의 연고지였던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경우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구글링하면 "일단은" 관광객이 놀러 갈 곳이 나왔다. 피오리아는 정말 단 하나도 안 나왔다.
한국어로 '일라노이 피오리아'를 검색해보니 이민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살 만하냐는 질문 글에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아니다', '좀 우중충한 공업 중심의 중소 도시'라는 답변이 달려있었다. 영어로 검색하자 관공서 사이트 주소만 주르륵 나오길래 뉴스 탭을 눌렀더니 범죄 관련 소식(11세 소년이 얼마 전에 차량 절도 사건을 일으켰단다)과 지역 정치인의 보도자료만이 드문드문 나올 뿐이었다.
한때는 시카고 다음가는 일라노이 제2의 도시였다고 하던데 전혀 믿기지 않았다.
경기장도 정말 작았다. 스프링필드 카디널스의 홈구장이었던 Hammons Field는 '이 정도면 목동 야구장이랑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로구장으로서 구색을 갖춘 모습이었다. Dozer Park는 커다란 전광판만 아니었다면 어딘가의 대학교 부설 야구장으로 착각할 뻔했다.
"식사도 마찬가지죠. 싱글A에 있을 때 제 월급이 1천600(약 160만원) 정도였어요. 숙소비 350달러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빠듯해요. 돈 아끼려고 직접 밥을 해먹거나 팀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까 영양섭취도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 2011.07.18 정영일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도전한다." (박동희의 스포츠춘추)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생겼던 개인적으로 정말 궁금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인들의 '핫도그'라는 음식에 대한 인식이었다. 미국인들은 이 밀가루와 고기 반죽의 덩어리를 '핫도그'라고 부르며 4.5달러에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정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케챱, 마요네즈, 그리고 간단한 야채 토핑을 바로 옆의 반찬통에서 덜어 넣을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걸 '핫도그'라고 부르며 4.5달러에 판매하는 행위를 수긍할 수 없었다. 이게 5590원짜리 핫도그라면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 앞 김밥 할머니 김밥은 7000원 받고 팔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Dozer Park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1달러당 한 번 돌릴 수 있는 경품 룰렛 이벤트였다. 운만 좋으면 1달러에 야구장이나 컵, 티셔츠를 건질 수 있었다. 심지어 내 앞에 줄 섰던 아저씨와 어린이들은 그걸 받았다!!
나는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날 앉았던 좌석은 더그아웃 바로 옆자리였다. 이런 자리는 난생처음 앉았는데, 관중석과 그라운드 간의 단차가 없는 야구장이라 그런지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을 생생히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01년 95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에 입단해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안병학은 “거포이면서 도루도 한 시즌 80개씩 하고, 어깨도 강견인 중남미의 야수 유망주가 한둘이 아니다. 미국 유망주 투수들은 가뿐히 시속 150km 이상을 찍는다. 소위 발에 차이는 게 유망주”라며 “미국행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최고였는데, 그 생각이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 2011.07.07 ‘정글의 세계’ 美프로야구 진출했던 한국 마이너리거들 격정 토로 (동아일보)
거짓말이고 사실 하나도 안 좋았다. 투수는 한가운데로 몰리는 변화구와 완전 빠지는 볼 아니면 타자가 딱 치기 좋은 코스로만 제구 된느 90마일 초반대 패스트볼을 던지다 줄창 얻어맞았다. 타자는 세 타석 연속으로 서 있어도 이닝 교대까지 비슷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맥아리 없이 아웃당했다. 더그아웃 분위기는 축축 쳐져 있었다. 재미없었다.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들을 교육하는 목적이 짙은 루키리그와 본격적인 유망주로서 대접받는 더블A는, 시즌 중·후반이 되어서도 장래를 촉망받는 유망주가 해당 레벨에서 경기를 뛰는 경우가 많다. 그 사이에 있는 싱글A는 다소 애매한 처지다. 2022년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개막 직후 3개월 동안 싹수가 보이는 유망주를 전부 더블A로 승격하는 바람에, 7월 중순에는 싱글A에 눈에 띄는 유망주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테다. 잘하는 동료들은 상위 리그로 떠나고 부진하던 동료들은 전부 방출된 상황에서, 2할 1푼 4홈런 16타점 정도의 애매한 성적을 올리는 자신들만이 시골 한복판에 남아 고군분투 중이었을 테니까. 날씨는 덥지, 야구는 마음대로 안 되지, 리프레시를 하려고 해도 시카고까지 자동차로 세 시간 남짓 걸리지...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보는 사람마저도 괴로워지는 경기였다는 소리다.
6회에 갑자기 빅리그 40인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는 현역 메이저리거, 드류 버헤이겐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부상 때문에 휴식을 취하다가 재활 점검차 싱글A 경기에 올라온 듯했다. 양 팀 모두 '영끌' 94마일 투수만 올리던 상황에서 갑자기 최고 97마일의 파이어볼러가 나타나니 속이 시원했다. 타자들에게 시원하게 두들겨 맞고 실점하길래 곧바로 기대를 접기는 했지만.
마이너리거의 생활은 고되고 배고프다. 100만~200만원 수준의 월급으론 고기도 마음껏 못 먹는다. 이들이 말하는 최악은 '장거리 버스 이동' 이었다. 이동 시간이 5시간 정도면 감사한 수준이다. - 2016.12.02 "美 마이너리그는 가혹한 전쟁터" (조선일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싸늘하고 캄캄한 아파트만이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혼자인 김병일은 약해져만 갔다. 결국 빅리그의 꿈을 품은 지 2년 만에 그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만 했다. - 2015.09.24 [이상서의 스윙맨] 강정호 이전 최초의 코리안 해적군단-김병일 이야기 (일간스포츠)
2022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국제 계약을 체결한 조원빈이 미국으로 넘어가자마자 에이전트에게 배운 것은 '치폴레에서 음식 주문하는 법'이었다. 교환학생 경험이 있는 한국인 에이전트는 18년 평생 한국에서만 살았던 조원빈을 식당에 데리고 가서 스스로 주문을 계산하게끔 했다. 조원빈의 홈스테이 가족은 훈련으로 지쳤을 그에게 집안일을 시켰고, 계란 후라이와 간단한 샐러드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처음 기사를 읽었을 때는 아직 마이너리그를 직접 보러 다니기 전이었고, 야구 하기에도 바쁠 선수에게 무슨 짓을 시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피오리아까지 가서 싱글A 구단이 있는 도시와 경기장의 열악한 모습을 직접 보고, 이런 곳에서 말 하나 안 통하는 선수들과 함께 버스를 타며 10시간씩 원정 경기 이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치폴레에서 볼 주문하는 방법조차 모르면 야구고 뭐고 타지 생활에 치이다 나가떨어질 테니까.
제아무리 수천 명의 관중이 와도, 이곳은 마이너리그다. 그리고 한국인 선수들은 평생을 '한국'에서 '동양인'으로 살다 왔다는 핸디캡을 갖고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째서 수많은 해외파 선수들이 싱글A에서 좌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또한 알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