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위닝 멘탈리티
이정후는 고척 스카이돔 시대의 키움 히어로즈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신인 시절 자신에게 붙어 있던 무수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며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거듭났다.
이정후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았다. 물론 이정후는 이종범이 아니었다. 빼빼 마른 몸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타고나지는 않았다. 주력 또한 단일 시즌 100도루에 도전했던 아버지에 비하면 한참 못 미쳤다.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에 비친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었다. 일부 학부모는 이정후가 아버지 후광으로 편하게 야구한다고 손가락질했다.
공을 방망이에 맞추는 능력만큼은 그해 아마추어 선수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정후가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1군에 자리 잡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수비 코치였던 홍원기 現 키움 감독은 스프링 캠프에서 이정후를 지켜보며 "배팅에 장점이 있다"라면서도 "수비는 경험을 쌓아야 할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장정석 전 감독도 성인의 몸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정후는 증명했다. 생애 두 번째 선발 출장 경기서 3안타를 몰아쳤다. 광활한 외야를 자랑하는 잠실 야구장에서 한 경기 멀티 홈런을 기록했다. '아버지가 이종범이라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수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자신을 주전으로 안 쓰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데뷔 시즌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안타를 쳤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무대를 떠날 때까지 계속 안타를 쳤다.
데뷔 1년차, 이정후는 KBO리그 신인 최다 안타 기록과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아버지도 받지 못했던 신인왕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데뷔 2년차 시즌이었던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연속으로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청소년기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던 '이종범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지웠다. 대신 아버지 이종범에게 '이정후 아빠'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정후는 데뷔 시즌의 달콤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부터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1년차 시즌에 정규리그 144경기 중 단 한 경기서 홈런 아치를 그렸던 이정후는 이듬해 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데뷔 4년차였던 2020년에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넘겼다. 2022년에는 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홈런을 쳐냈다. 2010년의 이대호 이후 처음으로 타격 5관왕을 거머쥐었다(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
2023년 12월 13일, 이정후는 미국 프로야구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1,490억 4,7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리거가 되었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입찰)을 통해 미국 무대로 진출한 역대 아시아 프로야구 선수 중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었다. 신인 시절 '이종범을 뛰어넘을 수 있겠냐'라는 말에 시달렸던 이정후가 아버지는 밟아본 적 없는 무대로 도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키움이 매년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으면서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비결 중 하나는 '선수단이 이정후의 위닝 멘탈리티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같은 팀 동료였던 이정후처럼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