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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가장의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 그리고 희망

버거운 삶, 가족이라는 이름의 동력

by 긍정미소


예설이는 단백뇨 수치를 확인하고 약으로 조절되는지 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녀야 했습니다. 매일 기도했습니다. 단백뇨 수치가 줄어들어 아이가 잘 치료되어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기를 매일같이 기도했습니다. 매달 병원에 갈 때마다 24시간 소변을 받아 제출해야 했고, 피검사도 받아야 했습니다. 첫 달의 검사 결과는 조금의 호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고, 우리는 약간의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약을 먹어야 했고, 약 복용 규칙은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 알씩 먹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스스로 알람을 맞추고 알람이 울리면 약을 챙겨 먹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달에는 약은 같은 시간에 계속 복용하되, 한 알을 반으로 잘라 먹자고 했습니다. 그만큼 단백뇨 수치가 많이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달에는 약을 4분의 1로 분할해서 먹기로 했습니다. 단백뇨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였지만, 당장 약을 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약의 양을 줄이고 병원 방문 주기도 3개월에 한 번으로 줄이자고 하셨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만성신부전증을 의심하며 마음을 졸이던 4개월여 만에야 우리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뭉개질 대로 뭉개지는 부모의 마음이란, 아마 우리의 부모님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에게 있어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행동하지만, 그 진심이 얼마나 전달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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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의 삶의 무게

부모로서의 삶은 참 버거움이 많은 듯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살 시도를 하시고 병원에서 눈을 뜨시고 처음 내뱉은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뭐하러 살렸어?”라고 말씀하시며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때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게요, 뭐하러 살아나셨어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깨의 무게감을, 그때 왜 그런 말씀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살을 선택하실 때부터 돌아기시기 전까지의 연세가 이제 제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 때로는 그 버거운 마음. 나 하나를 지탱해 나가기도 버겁지만 내색할 수도 없고, 그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그 무거운 돌덩이를 어깨 위에 지고 있는 듯한 기분. 이제는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물론 여태껏 살아오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선택이있고 삶이 있었던 것이니까요. ‘나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저의 삶의 철칙 중 하나입니다. 저는 아무리 힘들고 버겁더라도 제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것을 짐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저의 삶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있기에 제가 더 성장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고, 더 유연해질 것이고, 더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의 모든 가장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내 삶을 짓누르는 듯한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을 짐으로 여기기보다는 삶의 동력으로 삼아 더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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