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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Aug 24. 2022

열번째 만남

서류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소장에서 아버지 망으로 표시되었다. 법적인 절차를 위한 서류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눈으로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용도 표현도 한없이 차가웠다. 어머니를 모시고 왕복 열시간 정도 운전했다. 아버지 생전 주소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경정청구를 하러 갔다. 등기로 제출해도 될 것 같았는데 어머니는 하루빨리 접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시골 법원 창구에서 공무원은 투명 플라스틱 넘어로 서류가 반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사가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서류로 설명될 거라고 덧붙였다. 멀리 사는데 직접 방문하지 말고 등기로 제출하라고 안내 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차에서 끝없이 하소연하셨다. 장시간 운전으로 어지러웠고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첫째가 꽃을 키우고 싶다고 동네 꽃집에서 꽃기린을 샀다. 꽃기린의 꽃말은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라고 한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모은 돈으로 산동네에 마련한 작은 아파트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그 집을 자기 명의로 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서 시골에 땅을 마련하고 손수 지은 집이 있었다. 큰아버지는 자기 집을 자식에게 주고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 앞에서 할머니를 애물단지라고 부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라고 말했는데 그러고도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시골집도 형제의 명의로 하셨다. 생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갈 때 아버지는 조수석에서 전화기 너머로 큰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다. 작은아버지는 감옥에 가기 전에 자기 사업체를 아버지 명의로 해서 부도가 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어린 나를 시골집에도 작은아버지 집에도 맡겼다. 생전에 아버지는 조카와 고모부들을 데리고 일했는데 모두 등쳐먹고 배신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아버지가 아플 때도 찾아와서 손을 벌렸다.

법원으로 들어가는 길

생전에 아버지는 부모형제에게 좋은 아들, 형, 오빠, 동생이었다. 아버지의 깊은 효심과 우애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버지 같은 형제가 있으면 뜯어 말리고 싶다. 나는 아버지 같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처자식에게 차가웠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집에 들어 오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집에 오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가끔 집에 오면 어김없이 어머니와 싸웠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고 돌볼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부모형제보다 처자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면 섭섭하겠지만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어머니는 화병이 났다. 어머니의 하소연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짜증낸 나는 불효자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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