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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Apr 11. 2022

과음 후에

문과생 생존기

저번 주는 힘들었다. 과음 후에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 회장이 술자리를 마련했다. 임원의 승진을 축하하는 자리였고 나는 들러리였다. 옆에서 따라주는대로 마셨다. 회장은 용돈을 주면서 아기들 과자를 사주라고 말했다. 주량을 초과해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헛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불킥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원래 소심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조심하는 편이라서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술집 화장실에서 토했다. 임원이 대리를 불러서 같이 가는데 고속도로에서 차를 정차하고 갓길에 토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귀가해서 다음날 정시에 출근했다.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음료를 마셨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만취한 적이 있었나.

Mizzu Cho @ Pexels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한 회식에 불참하거나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몇년전 같이 일했던 팀장이 사모님을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며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많이 마셨다. 아내 말로는 집에서 화장실 변기에 토하고 변기를 껴안고 잠들었다. 직전 회사에서 까다로운 상사가 있었다. 항상 신경질적으로 말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격적이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내 앞에 앉아서 강권했다. 억지로 마셨는데 다행히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내 차를 타고 대리를 불러서 갔는데 자기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면서 대리비도 주지 않았다. 짜증났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해외 출장가서 호텔 라운지에서 밤늦게 혼자 병맥주를 마셨던 적이 있었다. 야경을 바라보며 두 병 마셨다. 그때가 일하면서 마셨던 술 중에서 유일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cottonbro @ Pexels

생전에 아버지는 출장을 가실 때마다 면세점에서 양주를 샀다. 거래처 선물도 있었지만 본인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마셨다고 말씀하셨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동생이 양주를 가지고 갔다. 동생은 술을 마시지 않는데 내가 들고 가면 집에서 혼자 조금씩 마실 것 같았다. 위스키 한 병만 들고 왔는데 아주 가끔씩 스트레이트로 조금씩 마셨다. 아주 옛날에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옆에서 조금만 따라주면서 많이 마시지 말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다. 커서는 아버지와 가끔씩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대나무처럼 유연하게 살고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본인은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 그렇게 살지 못했는데 아들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이제도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야지 나도 그렇게 살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울었던 것 같다. 대마도에서 이시야키를 먹으면서 고구마 소주를 조금 마셨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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