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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Jan 19. 2022

모르는 번호에서 이상한 사진이 왔다

많이 이상한

밤 11시 반쯤, 아내 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만나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어디 가서 번호를 돌리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 밤 중에 전화할 사람이 누굴까?'

아내는 전화받기가 무서웠는지 나에게 받아 보라며 폰을 건네주었다.

'누구지? '

나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해 봤다.

보통이라면 그쪽에서 "여보세요~"가 먼저 들렸어야 했다. 

몇 초가 흘렀을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몰래 속삭이듯이 

"여자?" 

한 마디만 들리더니 이내 몇 초 후 전화가 끊겼다.

남자아이 목소리였다.

'뭐지? 이 시간에'

그리고 몇 분 후.

아내 폰으로 방금 전화한 번호로부터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알몸

-[엉덩이 사진]

-[고추 사진]

-난 남자

-인증

-너도


'헐!'

아직 포경수술도 안 한, 딱 보니 우리 애 또래로 보였다. 

'뭐지? 이쪽에서도 벗은 몸 사진으로 인증을 바라는 건가?'

답장하기도 뭐하고 요즘 애들이 이정돈 가 하는 생각에 조금 충격이어서 그대로 무시하려고 했다. 

얼마가 지나고, 더 이상 문자가 안 오나 했지만, 이내 다시 문자가 왔다. 


-[엉덩이 사진]

-[고추 사진]

-[우리 아들 사진]


'이 새끼가!'

우리 애를 아는 녀석이 우리 애 사진을 도용해서, 지 고추 사진을 모르는 번호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보내고 있는 거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지?'

얼마 전 우리 애 폰이 고장 나서 엄마 폰으로 친구랑 노는 약속 전화를 자주 걸었던 게 생각났다.

'혹시 우리 애랑 자주 노는 친구?'

아들 폰에 있는 주소록에서 그 번호가 있는지 찾아봤다.

범인은 아들과 가장 친한 친구의 형이었다. 아이와 2살 터울의 그 형은 5학년.

아파트 단지에서 늘 어울려 놀던 친구의 형이었기에 다소 충격이었다.

'내 새끼가 호구인 건가?'

그 아이 생각에 얼마나 만만하면 지 고추의 주인으로 우리 애 사진을 팔고 있는 건지.


다음 날 바로 그 아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요즘 애가 밤에 잘 안 자고 이불 뒤집어쓰고 뭘 하더라니..."

그 아이 어머니도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젠장! 이게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사과는 됐고, 그 아이 교육과 재발방지 약속이 중요했다. 그리고 혹시나 사진도용이 더 있었을지도 걱정이 됐다.  

"혹시 모르니 그전에 보낸 문자가 있다면 확인해 주시고, 결과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뻘쭘한 대화는 끝이 났고, 아이에게는 당연히 비밀로 하기로 했다. 믿는 도끼에 제 발 찍히는 경험을 굳이 일찍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문제는. 

'그 형제 애들과 아들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하지?'

평소 꽤 자주 마주치는데도, 놀이터나 학교, 심지어 우리 집에 놀러 와서도. 나에게 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을 때부터 눈치를 깠어야...

'뭐지? 이상한데? 그냥 수줍음이 많아서겠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리 애는 좋다는데 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형제 어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OO사진을 도용한 건 다행히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어찌 됐든 죄송합니다. 아이 교육 다시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OO에게도 우리 애가 직접 사과를 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화만 왔어도 내가 이렇게 까지는 안 할 텐데. 만약 우리 애가 그랬다면 저는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아서...

참 별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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