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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Dec 08. 2020

수능 시험날의 기억

인생을 건 도박과 진짜 도박

나는 수능을 두 번 봤다. 재수 없게도 재수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반수라 하는,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수능을 또 봤다.

 

첫 번째 수능은, 옷은 평소 보는 모의고사처럼 보기 위해 교복을 입고 갔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시험장소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인상뿐이다. 1교시부터 망했다는 더러운 느낌만 남아있다. 

1교시를 마치고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은 힘들겠구나. 어차피 못 갔겠지만. 

2교시를 마치고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도 힘들 수 있겠다. 

3교시를 마치고서는 그럴 바에 재수를 해야 되나. 

4교시부터는 그저 시험이 끝나기만을 고대했다. 

전년도 수능 이 만점자가 수두룩 했던 것에 비해 그 해 수능은 불수능이었다. 누구는 이해찬 세대의 마지막 저주라고도 했다.


그래도 어찌해서 들어간 인천의 한 대학, 학창 시절 놀지 못한 한을 풀듯 미친 듯이 놀았다. F학점 3개에 학사경고, 학점 2.2/4.5. 학기가 끝나고 어머니는 재수를 권했다. 등록금에 용돈이며 1학기에 내가 쓴 돈만 600만 원이라고 하셨다. 종이 한 장에 빼곡히 적힌 목록이 한 학기가 지나면 2장이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불효자가 되기 싫었기에,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재수를 결정했다. 사실 결정은 진작에 했지만 시작까지 몇 주가 걸렸다. 수능이 정확히 100일 남은 시점이었다. 아침 9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식사시간과 이동시간을 빼면 하루에 12시간은 앉아서 공부를 했다.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다. 자정에 독서실에서 나오며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서울에 있는 알아주는 대학에 가고 싶다. 어디 가서 대학 이름을 얘기하면 '오~' 소리가 나올만한 대학. 


그렇게 두 번째 수능은, 잘 봤다. 나도 놀랄 만큼. 

수능 시험이 끝나고, 정문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20여분 동안. 어머니는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꺼냈다.

'집에 빚이 있다. 아버지가 대출받아서 경륜, 경마로 날린 3천만 원의 빚. 노후대책이라고는 집 하나뿐인 집에서 앞으로 큰돈 드는 뒷바라지는 무리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네가 교대에 들어가서 선생이 돼라. 아니면 농협대라도" 

대출, 도박, 빚, 돈, 선생 혹은 농협 직원. '집에서 도박을 하면 아들이 선생이나 농협에 들어갈 수도 있구나.' 

덤덤하게 들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시험을 망쳤더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궁금했다.

'아들은 이제 삼수냐 아니냐를 걸고 인생을 건 도박을 하고, 아버지는 진짜 도박을 하고 계셨구나. 아버지는 실패하셨지만. 그래도 다행히 나의 배팅은 성공했구나.'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가 화투판에서 용돈으로 천 원짜리 한 장과 따로 만원을 쥐어 주며 담배와 막걸리 심부름을 시킨 일이 생각났다. 아. 인생은 반복되는구나. 천 원짜리 한 장에 기뻐하며 구멍가게를 향해 뛰어가던 내 모습이 생각나 허탈했다. 내가 내 무덤을 파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구나. 


요즘 아버지는 전에 내가 쓰던 교통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 조회도 가능해서 대중교통 내역뿐만 아니라 결제 내역도 볼 수가 있다. 가끔 조회를 해보다 참 애잔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말이면 하루에 2건 정도 결제 내역이 뜨는데, 금액이 고작 1000원 단위다. 

2019.12.14. 15:00 경륜본부 1,000원

2019.12.15. 16:00 경마본부 2,000원


그나마 금액이 작아진 것에 감사해야 할지. 일생을 부지런하게 배팅하고 계신 것에 감사해야 할지. 그래도 오고 가고 운동이 되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수능 시험날만 다가오면 기억나는

배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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