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일반부 은상 - 김미선

by 편지한줄

할머니께


단풍이 꽃처럼 물드는 이 계절. 할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할머니를 찾아뵙지 않은 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허허거리고 무던히 웃어넘기는 저였지만 그동안 묻어두었던 상처들이 곪아 터졌나 봅니다. 할머니 댁으로 가는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는 걸 미루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고민하다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할머니, 저는 할머니께 어떤 손녀였나요? 제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많은 어르신을 만납니다. 우리 손녀가 얼마나 똑똑한지로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나도 우리 할머니한테 저렇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예쁜 똥강아지였던 적이 있을까?


어릴 적 네가 뭐하나 달고 나왔으면 좋았을 건데- 하는 할머니의 그 푸념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는 자괴감으로 이어지기까지 저는 할머니가 가볍게 내뱉으신 말씀에 몇 번을 가슴을 베이고 또 베였습니다. 사촌 남동생에게는 내 제삿밥 올려줄 놈이라며 귀한 음식 있으면 제일 먼저 입에 물려주시곤 하셨지요. 어린 마음에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모릅니다. 할머니 원망도 많이 했지요.


늦은 나이에 공무원시험을 보겠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도 아버지 등골 뺀다고 참 많이 혼내셨어요. 아들도 아니고 딸을 4년씩 대학 가르쳐 놨더니 결혼은 안 하고 또 공부한다고. 저도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마음이 컸고 저도 나이가 서른이 넘어 공부하겠다고 맘먹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작한 것은 다니던 직장 일이 너무 힘에 부쳤기 때문이었어요. 다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스트레스로 제대로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살이 급격히 빠져서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날이 많아 병원에서 영양주사를 맞고 출근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가고 정말 내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할머니 보시기에는 나이도 많은 것이 배부른 투정이라고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당시엔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모아 인생 최대 도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최종합격했다는 소식에 할머니가 전화를 다 주셨었죠. 약간 떨리던 할머니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습니다. “미선아, 고생했다. 고맙다. 보고 싶은데 왜 한 번도 안 오니? 할머니 좀 보러와.” 그날 힘겹게 말씀을 하시던 목소리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은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년이면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는데 나는 무얼 위해서 그동안 할머니를 미워하고 혼자 속상해한 것인지 지금까지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다 혹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더 큰 후회만이 남겠구나 싶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손녀딸이 마음이 좁아 할머니께 그간 어리광을 부렸다 이해해주세요. 할머니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찾아뵙지도 않고 정말 죄송해요.


얼마 전 큰고모한테서 전해 들은 할머니의 시집살이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 엄마도 고생 많이 하셨지. 작은 엄마는 아들을 셋이나 낳았는데 큰며느리인데 딸을 내리 셋을 낳았으니 아들 못 낳는다고 구박 많이 받으셨어. 감이 창고에 썩어 나가도 우리 할머니가 홍시 하나를 못 먹게 했으니, 어찌나 억척스럽게 그러시던지. 지금도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또 딸이라고, 셋째 딸을 낳았을 때는 몸조리도 제대로 못 하시고 밭에 나가 일을 하실 정도였다니 아들, 아들 원하시는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됐습니다. 그 시절 며느리 중 어느 누가 시집살이를 안 했을까마는 유독 힘든 세월을 보내셨을 할머니의 그 시간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할머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며느리라는 이유로 가슴 속으로 삼켜야만 했을 부당한 일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저한테까지 영향을 준 것이겠죠.


할머니, 저는 지금 2019년에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겪으셨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다른 세상이지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인생이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오듯이 부모님의 돌봄을 받던 제가 이제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어른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할머니가 되겠지요. 그러면서 어릴 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릴 적 크게 넘어져 다리에 큰 상처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 살이 크게 패여 아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사람의 회복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해 며칠 안 가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았습니다. 할머니의 무심한 말씀이 큰 상처가 되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에도 새살이 돋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또 시어머니로, 할머니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긴 여정을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할머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 아들 하시면서 저한테는 사랑 한 옴큼 안 주시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눈 내리는 겨울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꼭 광에서 반쯤 언 홍시를 꺼내다 주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달콤함이 할머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앞산에 붉게 익어가는 홍시를 보니 할머니 생각이 더 납니다. 하루라도 빨리 할머니 뵈러 찾아뵐게요. 그때까지 몸 건강하세요.


2019년 10월 27일,

- 손녀딸 미선이 올림 -




2019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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