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은상 - 지현수
계절은 바삐 겨울로 갑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아니 사람이 매섭게 그리운 날이 다가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 가장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실까요? 마흔 넘은 자식이 뒤늦게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오겠다고 했을 때, 한숨만 내뱉던 아버지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릴 돈을 버는 일만큼 가장에게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하셨지요. 부지런히 돈 벌어 집을 사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일이 제가 할 일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아버지 말씀 중에 틀린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가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저도 잘 압니다. 마흔을 갓 넘어선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꾸는 일이 이기적인 짓이라는 걸 저도 모를 리 없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 살림을 돌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날이 벌써 일 년이 다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아내가 하던 살림을 거들고 아이를 돌보고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며 소일거리를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보기에 따라 전업주부도 되었다가 프리랜서도 되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이런 저에게 집에서 살림만 하는 변변치 못한 주부라거나 백수 아니냐고 타박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아버지가 하시는 모든 말씀에 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솔직한 제 심정을 앞으로도 말로써 전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편지로 대신 전합니다.
아버지 손자가 벌써 열 살이 되었습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서 그런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저에게 와서 놀아달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는 늘 부족합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이 바빠 주말에도 잘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아이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고, 아이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놀아주지도 못한 채로 어느 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서먹한 아버지와 저의 관계처럼, 십 년 후에는 저도 제 아이와 서먹한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자라는 동안 쌓인 추억이 적지 않습니다. 가끔 옛 앨범을 들추듯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립니다. 내게도 즐거웠고 행복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추억에서도 아버지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늘 바쁘셨습니다. 집에서는 무엇이 그리 바쁘셨을까요? 어머니한테 놀아달라고 하거나 동네 아이들과 놀라고 하시던 아버지를 한때는 원망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합니다. 방과 후에는 아이와 같이 보도 게임을 하고 운동장에서도 뛰어놀고 도서관에도 갑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날마다 크는 모습을 볼 때 저는 큰 행복을 느낍니다. 자식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돈으로 쌓지 못할 추억과 행복을 만듭니다.
비록 아버지와 제가 생각하는 가장의 역할과 인생관이 다르다 하지만 크게 본다면 우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고 오늘의 저는 아이와 함께 행복한 날들을 만듭니다. 아버지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으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큰아들 올림
2019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