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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검은 봉지, 세상에서 가장 멋있으셨던 우리 하부지께

청소년부 장려상 - 임미나

To. 검은 봉지, 세상에서 가장 멋지셨던 우리 하부지께


하부지! 저 손녀 미나예요. 늘 '할아버지' 발음이 안되어 애칭으로 불렀던 울 하부지, 오랜만에, 오랜 시간만에 만나러 왔어요. 혹시나 이걸 쓰면 보러 오실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요. 그땐 몰랐어요. 하부지 바지 주머니에 늘 있었던 땅콩 부스럼, 달콤한 알사탕이 그리운 맛인지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맛인지. 물론 사 먹을 수 있겠죠. 그런데 하부지, 사 먹어도 맛있게 먹어보려 해도 그 맛이 안 나요... 눈물만 쏟아질 것 같아요. 


외할머니, 외하부지 손에서 자란 기억이 생생하기만 해요. 그때 울 하부지랑 같이 따듯한 장판 위에서 하부지 품에 안겨 자는 게 너무 행복했는데, 장판의 열기가 따뜻했던 게 아니고 할아버지 체온이 따뜻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하부지의 품이 더 그리워요.


하부지, 많이 아프셨는데 그때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참 답답했어요. 병원 다녀오실 하부지를 마당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근데 하부지, 기억나세요? 기다리는 저 배고플까봐 병원 앞에서 파는 조그만 약단밤 포장마차에 가셔서 검은 비닐봉지에 투박하게 사 오신 약단밤. 꼭 두 봉지의 약단밤. 동생 유진이와 한 봉지씩 나누어 먹으라고 하신 하부지의 마음이 늘 느껴졌었어요. 사 가지고 오시는 길에도 가끔 같이 오는 날에는 식을까 맛없을까 하며 품에 꼭 안고 오신 약단밤이 너무 먹고 싶어요. 그 사 오신 약단밤은 하부지의 손으로 직접 제 작은 입속으로 쏘옥 넣어주시며 흐뭇해하시는 눈빛이 생각나요. 


한 달에 한번 대학병원에 아프셔서 진료받으러 가시는 것을 저는 잘 모른 체 마냥 약단밤이 기다려졌던 날들. 그 작은 순간순간이 그리운 것 같아요. 저와 동생을 위해 "예쁜 내 손녀들~"이라고 부르시며 작은 제 손에 쥐어주신 검은 봉지 안의 보석들이 너무 그리워요. 사과, 딸기, 방울토마토, 새우깡, 바나나킥... 한 손에 낡은 나무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보석들이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저를 마중해주셨던 울 하부지. 보석들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지금도 길가를 혼자 걷고 있을 때면, 지팡이를 짚고, 검은 봉지를 들고 서 계시는 모습이 제 기억에 스쳐 지나가요. 남들은 검은 비닐봉지가 촌스럽고 투박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어느 멋진 명품 쇼핑백보다 천배 만배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정겨워요. 저에게 큰 사랑들을 아낌없이 주신 하부지, 고맙습니다. 작은 것들에 사랑을 주시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고맙고 사랑해요. 


그 투박한 손으로 어리고, 어렸던 저에게 고소한 냄새와 노란 콩고물에 묻혀있는 쫀득쫀득한 인절미도 목이 메어 못 먹을까, 가위로 다 잘라주시는 배려 깊은 울 하부지. "우리 손녀딸, 잘도 받아먹네~"라며 조그만 입속에 넣어주신 인절미. 하늘나라에서 저 내려다보고 계시고 있죠? 멀게만 느껴지는 하늘 나라이지만 함박눈처럼 조용히 소복소복 쌓이는 추억 주시고 가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하부지를 만난다면 그땐 꼬옥 안겨 할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덕분에 너무 행복했다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아이가 울며 달려온다면 그저 꼬옥 안아주세요. 하부지, 저, 늘 하늘나라에서도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부지, 인간에게는 4개의 삶이 있대요.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가꾸는 삶, 그 땅에 씨를 뿌리는 삶, 그 씨에 물을 주는 삶, 그 열매를 수확하는 삶. 할아버지는 행복한 순간을 맞기 위해 가꾸었던 삶을 사셨길 바라요. 다음 생은 꼭 행복하고 건강하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를 뵙게 될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를 뵐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나면, 뵙게 되면 제가 하부지가 해주셨던, 사주셨던 보석들이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 들고 갈게요. 그리고 드릴게요. 하부지, 열심히 하부지가 주신 사랑 남들에게 베풀며 살고 갈게요. 하늘에 소소한 들꽃처럼 그저 따스한 바람만 불기를 빌게요. 사랑해요, 하부지.


2017.4.12.수

-하부지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손녀 미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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