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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미호야, 진천아, 제발!

일반부 장려상 - 김윤희

미호야, 진천아, 제발!


오늘도 그날처럼 봄 볕은 찬연한데 너는 끝내 돌아오질 않는구나, 그렇게 다시 떠나갈 걸 왜 돌아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는지 원망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네가 처음 홀연히 떠나갔을 때는 먹고사는데 급급하여 떠난 자리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어.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니 시름시름 병들어가고 있는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어. 삶에 있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려온 셈이지.


그동안 너는 무언의 몸짓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피력했어. 얼마나 치열하게 시위를 벌여왔는지. 그 와중에 너의 가족과 동료들이 여럿 죽어 갔지. 더 이상 살 수 없어 모두 떠나게 만들어 놓고도 우린 의식조차 못하고 살아온 게 사실이야.


무덕무덕 토해놓은 연록의 산야가 가슴에 차오르던 어느 봄날, 네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들려왔어. 난 한달음에 달려갔지.


드디어 미호천 가에서 유유히 노닐고 있는 너와 그 옆에 또 한 녀석의 모습이 눈에 잡혔어. 둘 사이가 예사롭지 않더구나. 난 망원경을 들이댔지. 비로소 선명하게 너희를 볼 수 있었어.


늘씬하게 잘 빠진 선홍빛 다리 하며, 길게 흘러내린 흰 목선의 부드러움은 선 고운 조선 여인을 연상케 하더구나. 하얀 몸통에 까만 꽁지 깃털과 길고 곧은 검은 부리는 당당하면서도 단아한 선비의 기품이 느껴졌어. 한눈에 봐도 귀티가 흐르더라.


'천연기념물 199호' 이제야 너의 진면모를 제대로 보게 된 거야. 새 박사님은 B-49, 허벅지에 신분증을 달고 날아든 네 이름을 '미호'라고 불렀어. B-49로 인해 교원대 청람 황새공원 소속임과 얼마 전 집을 나간 세 살배기 여자라는 것이 밝혀졌지.


네 곁에서 맴돌며 따르는 녀석은 '진천'이라지? 진천에서 처음 발견한 사진작가가 그리 이름 지어주었다고 들었어. 꽁지 깃털과 날개 끝 깃털의 색으로 보아 두 살 안팎으로 보던데, 연하남인 셈인가?


자연번식을 기대하며 너희들의 사랑에 관심이 집중됐어. 사람들의 시선이야 어디 머물건 늘 가까이 붙어 다니는 둘의 모습이 그저 순정해 보이더라. 첫사랑일 듯한 진천이의 순수한 사랑 행위는 미소를 머물게 했어. 때때로 부리를 서로 톡톡 부딪히며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며 싱그러운 젊음, 미호천에 맑은 희망이 느껴졌어.


황새, 너희들은 지금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되어 있지. 한때는 흔히 보던 것을 환경파괴로 인해 멸종위기를 겪게 하고 있으니 미안하고 볼 낯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황새 부부의 눈물겨운 사연은 우리를 더더욱 숙연하게 했어.


1971년 음성에서 황새 한 쌍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떴고, 3일 만에 밀렵꾼에 의해 수컷이 사망했대. 홀로 남은 암컷은 매년 봄이면 살던 마을을 찾아와 번식도 못할 무정란을 낳고 품기를 12년, 쇠약해진 몸은 끝내 농약에 중독이 되었대. 겨우 구조하여 서울대공원에서 관리하며 수컷과 신방을 차려주었는데 끝내 거부하며 죽은 남편에 대한 지조를 지키다가 홀로 된 지 23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야.


그렇게 이 땅에서 사라져 간 황새는 어디에서건 오래 머무르지도, 자연번식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집 나간 미호가 야생의 연하남과 함께 찾아왔다니... 그것도 내 고향 진천에서 말이야. 살아서 살만한 곳, 생거진천은 새들 간에도 소문이 번진 것인가 싶어 반갑고 흥분되었단다.


두 달 가까이 머물며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던 미호와 진천이, 너희 들의 사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는데 어느 날 또다시 훌쩍 떠났더구나.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했나 보다. 너희들이 맘 놓고 노닐던 그 형태로 꼭 되돌려놓으마.


"미호야, 진천아! 이제 제발 돌아와 다오"


2017. 4. 30.

미호천 가에서 너를 그리며. 김윤희.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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