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금상 - 안세진
언니 나 언니의 예쁜 동생 세진이야. 이렇게 막상 편지 쓰려니까 좀 오글거리고 어색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언니에게 편지로 나마 내 마음을 한번 전해보려 해.
내가 7살 때쯤이었나? 이제 곧 학교 들어간다고 기대에 부풀던 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 엄마랑 아빠 두 손 꼭 붙잡고 가방을 사고, 문구점 아주머니에게 학교에서 필요한 문구용품을 고르고, 유치원 졸업하고, 설레면서 자장면을 먹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아. 그때 나이 차이가 꽤 났던 언니는 나보고 초딩이 뭘 그렇게 설치냐고 타박 줬었잖아. 너무 서러워서 입학식 전에 울어가지고 입학식 날에 띵띵 부은 얼굴로 학교 갔던 것도 아직 생각나. 그래서 친구한테 붕어라 불렸었던 것 같고. 그리고 우리가 절대 잊지 못할 그날. 4월 29일. 그때 난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 담임선생님이 날 조용히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전화를 받아보라는 거야. 언니였어. 그렇게 울던 언니의 목소리는 또 처음인지라 나도 놀랐었잖아. 서럽게 울던 언니 목소리. 그리고 부모님이 안 계셔서 우리 집에 계실 할머니의 울음소리도 들렸어. 내가 왜 우냐고 이유를 물어보려던 순간 언니가 말했었어. 내가 왜 우냐고 이유를 물어보려던 순간 언니가 말했었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럴 리가 없었어. 분명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제주도에 있을 부모님이 돌아가셨대. 그것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분명 어렸을 적이지만 나도 알건 다 알았었거든. 죽음이라는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단걸. 완전 서럽게 울었던 것 같아. 언니도 많이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슬펐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일 힘들었던 건 어린 내가 아닌 스물 한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가장이 되어버린 언니였던 것 같아.
그때부터인가 언니는 학창 시절 유일한 추억이었던 친구들과 연락 다 끊고 영어 선생님이 꿈이어서 어렵게 공부해서 들어간 이화여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그냥 악착같이 돈 벌었잖아.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했었어. 낮에는 식당 서빙 알바 밤에는 편의점 알바 새벽엔 신문지, 우유 알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솔직히 지금까지도 언니가 자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까지 돌아가셔 버리고 우리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정말 아무도 없었어. 고모들도 다 떠나버리고. 귀엽게 대해주시던 삼촌들마저 나 몰라라 하시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나 몰라라 하던 친척들이 우릴 데려가려 하더라고. 나 그때 솔직히 너무 기분 좋아서 당장 삼촌이랑 같이 살자고 언니한테 투정 부렸었는데 언니가 우리 둘이서 살 거라고 힘드니깐 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눈물을 보였을 때 언니 원망 되게 많이 했었거든. 후에 알았지만 그때 국가에서 받은 돈, 보험회사에서 받은 돈 때문에 우릴 데려가려 했었단 걸. 그때 언니 마음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나라도 언니 등 두드려줬어야 했는데. 나는 힘들면 언니한테 기댔지만 언니는 기댈 곳도 아무것도 없었고. 혼자 다 감당해야 했을 언니 생각만 하면 너무너무 미안한 마음만 든다... 그 후에도 부모님이 없는 나를 부모 없는 자식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 많이 했잖아. 학교 운동회 때 언니가 항상 도시락 싸서 와주고,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 보내려고 잠은 훨씬 줄여가며 정말 열심히 돈 벌고,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언니가 남부럽지 않게 꽃다발도 3개씩이나 사줬잖아. 기억 못 할 줄 알았지. 나 다 기억하고 있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언니는 나한테 정말 언니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날 이렇게 예쁘게 키워줬는데 정작 나는 언니한테 가장 기본적인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못한 것 같아. 내가 언니한테 진 빛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진 모르겠지만 언니가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은 아니더라도 내 방법으로 갚으려고 노력해볼게. 공부도 남들보다 두 세배는 더 열심히 할 거고 나중에 돈도 정말 많이 벌어서 언니가 날 정말 잘 키웠다 소리 들으 수 있게끔 행동할게.
언니는 내게 정말 돌아가신 엄마, 아빠보다 더 부모님 같은 존재였어. 만약 그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을 해보곤 해. 그리고 난 항상 아마 지금처럼 훌륭하게는 못 자랐을 거라 생각도 해봐. 가끔은 정말 가끔은 먼저 떠난 엄마 아빠한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 하늘에서 지켜보실 부모님이 화내실 수도 있겠다. 그치... 언니, 우리 정말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살자. 우리 정말 뒤는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 우리 정말 앞으로 꽃길만 걷자. 나는 결혼 안 하고 평생 동안 언니랑만 살 거야. 언니가 싫다고 해도 난 언니랑 살 거니깐 우리 세계일주도 해보고 막 맛집도 다니고. 언니 애들 좋아하니깐 보육원에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러 다니자! 그래서 먼 훗날 우리가 엄마 아빠 곁으로 갔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 손 꼭 붙잡고 수고했다고 앞으로는 떨어지지 말자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정말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살자. 언니 항상 고마웠고 앞으로는 고맙다는 그 말, 정말 많이 하도록 노력할게. 우리 다음 생에 태어나면 또 언니랑 동생 하자. 그때는 마음 아파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내가 정말 사랑하고 또 사랑해.
언니의 하나뿐인 동생 세진이가.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중고등부 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