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드리는 편지

중고등부 대상 - 최재용

by 편지한줄

봄을 맞아 드리는 편지


아버지, 저의 어릴 적 사진첩을 이리저리 보다가 당신의 젊었을 적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지금보다 많이 작던 저를 안고 방긋 웃으시는 당신의 모습이 교정에 핀 철쭉을 닮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아니 어쩌면 당신과 제가 함께 지냈던 어릴 적의 집에 핀 그것을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롯이 당신과 나, 둘만의 공간이었던 마당. 그곳엔 봄만 되면 만개하는 수많은 꽃나무들이 있었죠. 어쨌든 그 꽃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사진을 보는 저조차 덩달아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사진 속의 저는, 정말 당신이 행복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이란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아버지. 당신이 저의 작은 손에 배드민턴 라켓을 쥐어주며 일부러 져 주면서 내비치는 눈웃음, 누나들과 다투고 당신에게 안길 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짓, 당신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저를 안아줄 때의 그 땀내 나던, 따뜻한 온도. 그건 어리던 저에겐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있는 지금의 저는 마음이 아련해옵니다. 행복하지만 맘 놓고 행복할 수 없었던 당신의 지친 일상을 생각하면서. 당신이 제 앞에서 웃었던 만큼, 뒤에선 남몰래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당신의 부모님-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난 그날, 당신이 화장실에서 몰래 울음을 터뜨리던 그때도 당신은 제 앞에선 상처를 감추었죠. 또한 당신의 사랑하는 두 딸-영원히 어릴 것만 같았던 두 딸이 대학을 가고 사회로 나아간 후 텅 빈 당신의 마음도 제 앞에선 메워져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 단지 당신이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눈물을 감추어 왔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습니다. 당신은 저와 가족들에게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기두이어야만 했고, 낙엽이 지지 않는 거대한 상록수 같은 존재여야만 했습니다. 당신만 바라보며 세상모르고 순진하게 웃고 있는 저를 보며, 당신은 스스로 약해 보이고 싶지 않으셨겠죠. 그런 강인한 가장이 되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당신은 아마 이루고 싶었던 꿈도 포기하셨을 겁니다. 젊은 날의 누구나 그러하듯이,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운 꿈. 하지만 생계를 위해선 깊숙이 숨겨둬야만 했던.


꿈, 당신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제가 이뤄나가기를 간절히 바랬었습니다. 혹시, 우리 집 마당에 키우던 벚나무 두 그루를 기억하시나요? 봄마다 수많은 꽃비를 뿌리곤 했던, 당신이 매우 사랑하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이 너무 많던 제가 톱이 무척 쓰고 싶었던지 그 나무를 베어버렸었죠. (미국의 어떤 유명한 전 대통령께서도 그랬었다죠.) 당신이 그 나무를 아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웃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재용아, 마당이 넓어 보인다! 잘했다."라고 말하면서요. 그때의 한바탕 소동이 지금의 당신과 저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을 저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선뜻 내어주었습니다. 그중에는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벚꽃나무처럼 빛나는 꿈도 있었겠죠. 그러나 벚꽃나무가 제 호기심에 의해 베어져 버렸듯이, 당신의 꿈을 향한 열정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포기되었습니다.


아버지, 가정을 위해 그 꿈을 버리고 오늘도 일터로 나가셨을 당신의 뒷모습은, 지금의 저에겐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웃어주시는 그 모습은 주름살 몇 개가 늘었다는 것 이외에 아무 변화가 없지만, 그 웃음은 지금의 저에겐 오히려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당신이 힘든 내색을 하시진 않지만, 또 이 땅에 쉬운 직업은 없다고도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만, 당신의 일이 매우 힘든 것이란 사실을 압니다. 더울 땐 더 덥게 일해야만 하고, 추울 땐 더 춥게 일해야만 하는 힘든 일이란 것을요. 당신의 땀에 젖은 작업복과 낡아버린 작업화가 어느새 당신과 너무도 닮아있었다는 것을 저는 왜 몰랐을까요.


오늘도 당신은 일을 하셨겠죠. 당신과 너무도 닮은 그것들을 몸에 걸치고, 예전 같지 않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하지만 아버지, 오늘 당신이 하셨을 그 고된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힘들 때마다 내쉬던 거친 숨과, 당신이 흘린 땀과, 때때로 당신의 뺨을 타고 흘렀을 눈물이 모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당신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당신의 힘든 일상에서, 제가 당신의 젊은 날과 같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지. 제가 당신이 키웠던 벚꽃나무처럼 저만의 꿈을 키워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을지. 당신에게 저는 삶의 이유였고, 나라는 존재가 당신이 가진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였다는 것을. 아버지, 그래서 저의 꿈도 이제 꽃봉오리를 터뜨리려 합니다.


제 꿈은 바로 저의 아버지와 같이, 누군가의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것.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들 재용 올림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중고등부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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