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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내가 나에게

고등부 장려상 - 황수현

To. 과거의 수현


나는 현재의 수현이다. 과거에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기 위해 쓰게 되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고 자랐다. 엄마도 아빠도 너를 많이 아껴주셨다.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이 반겨주고 친척댁에 가면 “어유, 우리 이쁜 수현이 왔네.”하시며 널 맞이해주셨다. 너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받고 싶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였다. 초등학생 때 까지만해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남들이 너를 부러워하고 칭찬해주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너는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는 많은 사람들이 널 멸시하고 싫어할 것을 알지 못했다.


너에게 그 일들은 무척 무겁게 다가왔다. 너는 그저 친구를 도우려던 마음뿐이었다. 비방 받고 있던 친구를 너는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늦은 밤 친구의 집을 찾아가 위로해주고 친구들을 대변해 해명해주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너는 그 친구를 감싸주었다. 그 친구는 너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겼다. 너는 그런 친구가 미웠지만 참았다. 도움을 받으면 고마워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고마워하지도 않는 친구를 계속 도와주기만 하는 게 지쳐갔다. 너는 그 친구를 더 이상 도와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네가 그 친구를 도와주지 않자 그 친구가 화를 냈다. 그 친구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까지 너를 나쁘게 생각했다. 그 친구는 오래된 친구가 아니었다. 길어봤자 두 달 정도 같이 다닌 친구였다. 오래된 친구였더라면 아무 말 없이 끝까지 도와주었을 것이다. 너는 억울했다. 하지만 말수가 적은 너는 너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너의 학교생활은 괴로워졌다. 그 친구의 비방이 너에게로 돌려졌다. 너는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딜가도 내 험담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SNS로도 너를 향한 욕설들이 난무했다. 또 익명으로는 너의 욕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욕까지 들어야 했다. 너는 어려웠던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 네 잘못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누구도 너의 얘기를 들어주려하지 않았다. 들어주는 척 뒤에서는 욕을 했다. 너는 혼자였다. 아무도 네겐 없었다. 너는 부모님이 두 분 다 바쁘셔서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사랑받았던 기억이 꿈처럼 느껴졌다. 사건 이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저 헛된 바람이었다. 너는 두 달 동안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네겐 지옥 같았다. 매일 죽고 싶었다. 손목을 칼로 긋고 또 그었지만 아무리 그어도 아프지 않았다. 죽지도 않았다. 너는 죽을 정도로 세게 손목을 그을 용기가 없었다. 긴팔을 입고 그 상처를 숨겼지만 어느 날 부모님이 발견하셨다. 부모님은 너에게 모른 척을 했다. 밤이 되어 네가 잠이 들면 찾아와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시며 숨죽여 눈물을 흘리셨다. 나지막하게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고, 너는 결국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학을 가게 된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늘 혼자서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혼자라면 네가 상처를 주는 일도, 받는 일도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년을 혼자 보내고 나니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다. 네겐 지옥이었던 중학교 시절, 너는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은 지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네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나는 네가 싫었다. 어느 날 너와 관련이 없는 일에도 너를 탓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너는 핑곗거리일 뿐이라는 거. 너라는 핑계를 대고 회피하려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널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너도 지금의 나라는 것. 지금의 나도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네가 힘들었을 때보다 훨씬 잘 지낸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너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나는 꽤 많이 괜찮아졌다. 사실 완전 괜찮다고는 못하지만 그럴싸해졌다. 너도 힘든 일을 겪고 시간이 지나 결국 내가 될 것이다. 지금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겠지만 참아주면 좋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힘내.”라는 형식적인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힘내라는 말이 해줄 말이 없어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힘내라는 말은 더 너를 아프게 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너에게 그 시간을 참고 기다려달라고 말하겠다. 너는 아무 말 없이, 네 맘을 알아줄 필요도 없이 그저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나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옆에 아무도 없어 고통스럽다면 내가 있어 주겠다.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은 더욱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내가 유일한 네 편이 되어주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네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말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나는 네가 되어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그동안 너 혼자 아팠던 것이 아니라고, 나도 네가 힘들 때 항상 곁에서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러니 그곳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2021.07.28. 수요일

From. 현재의 수현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고등부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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