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의 마지막 홑이불, 어머니께-

일반부 은상 - 이영혜

by 편지한줄

-내 꿈의 마지막 홑이불, 어머니께-


어머니, 고향집 담벼락 아래 피어 뜨거운 여름을 알리던 부용꽃이 요즘 한창이에요. 청년의 힘줄처럼 짙푸른 나뭇가지에서 잎들이 다투며 자라나는 푸른 계절이지만, 저는 목적도 없이 대바늘로 안뜨기와 겉뜨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풀며 하루를 보냅니다.


어머니, 언젠가부터 제 안의 하이드가 자주 등장했음을 고백합니다. 잠깐 단역으로 등장하다 그 즈음엔 주연의 흉내를 내며 절 잠식하려했어요.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는 엄마와 나 사이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매회를 악역으로 일삼아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맨 몸으로 감꽃같이 떫은 삶을 일구시느라 큰 딸인 제게 빨래며 청소, 아픈 동생 돌보는 일까지 맡기고 공장에 다니신 어머니. 어린 동생이 진료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낫던 봄날의 아침, 눈부신 바깥과는 달리 습기 차고 어두웠던 좁은 방에서 어깨를 흔들며 우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지갑의 돈이 없어졌다고 매번 저를 의심하는 어머니께“엄마, 왜 이렇게 힘들게 해요? 모든 사람들이 내게 잘한다고 하는데 어머닌 언제 칭찬 한번 해 준 일 있어요?” 라고 울며 말하던 제 얼굴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역겨워요. 악의 화신이 되어 가슴속의 잉걸불을 쏟아내던 저는 곧 주름 가득한 어머니의 손을 보았어요.


말기암으로 투병중이시던 아버지가 강을 건너가시고 저마저 암 투병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께서 “너거 아버지 간 것은 괜찮은데 아직 앞이 창창한 니가 와 이라노? 내가 대신 아파야하는데….” 하고 우시며 내 볼을 쓰다듬어 주시던 그 손. 평생을 가난과 싸우던 남편을 보낸 일이 어찌 괜찮았겠어요? 그날 엎드려 우시던 굽은 등의 어머니를 곱씹어 되새어머니, 저는 가방에 내의와 가을 옷, 양말 세 벌김질하며 주인집 언니의 교복을 물려받게 한 어머니를 이해했어요. 팍팍한 살림을 하셔서 알뜰함이 몸에 배어 그랬을 것이라고. 물론 한 창 멋을 부릴 중?고등학교 시절에 헌 교복을 새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빨고 다림질하던 제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남동생이 새 교복을 입은 것을 보며 시기보다는 참 잘 생겼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 금쪽같은 외아들을 당신보다 앞장서 보낸 삶의 뒤란이 얼마나 휑하셨으면 어머니의 영혼이 어지러워져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시는지….


어머니, 용서하세요. 밤마다 잠을 주무시지 않으시고 자꾸 나가시려는 어머니를 지키느라 현관문 앞에 잠자리를 마련한 날, 하이드가 찾아와 속삭였어요. “자네도 항암 이후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으며 잠들어야하는데…. 이러다가 네가 다시 아플 수도 있어. 예쁜 손자를 더 오래 보아야하지 않겠나? 또 집을 나가셔서 영영 찾지 못하면 어쩌려고?”


어머니, 저는 가방에 내의와 가을 옷, 양말 세 벌을 넣어 어머니를 거기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어요. 제가 갓난 아기였을 때 어머니는 병약한 저를 품고 밤을 새웠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서정주 시인은 -네 꿈의 마지막 홑이불은 영원과 그리고 어머니-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날 이후, 밤이 오는 것이 두렵고 싫었어요.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가오면 그 푸른빛이 불안하고 견딜 수 없이 막막하기도 하여 오도카니 방구석에 앉아 밤을 맞이합니다. 그 시간이면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시며 어머니가 ‘짠’ 나타날 것만 같아요. 꿈에서는 건강하신 예전의 어머니와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시원한 미숫가루를 마시며 고소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어리석게도 난 어머니가 그럴 리 없다고, 단잠 푹 주무시고나면 건강해지실거라는 생각을 곧잘 하곤 합니다. 올해 혼자 캐면서 해마다 어머니와 쑥을 캐던 봄이 생각났어요. 된장을 넣고 구수하게 끓인 쑥국을 한 술 뜨기도 전에 눈앞이 흐려졌어요.


그러나 어머니, 큰딸이 이렇게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것을 싫어하실 것을 압니다. 우울이 우거질 때마다 어머니가 잠시 정신이 있으실 때 “딸아, 고맙다. 미안하다.” 하시던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 말씀은 제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 독을 없애주거든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의 손자가 사랑스러워 손뼉을 치며 칭찬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어눌한 말과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대견해하고 감사해할게요. 요양원에 다시 ‘비대면 면회’로 전환되어 창 너머로 만나야 하지만 헤어져 있는 동안 저도 하나뿐인 딸이 노년의 병든 나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산에 다니며 육체에 건강을 선물하고 있어요. 푸르스름한 우울에서 벗어나 뒷산의 편백나무 숲과 길섶의 동자꽃, 나리꽃에게 다정다감하게 말을 걸어 볼게요. 사람은 누구나가 마음속에 몇 개의 오름을 품고 산다고 해요. 어머니와 전같은 오름을 올라갈 수는 없지만 각자 부지런히 걷기로 해요.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기로 해요.


씩씩한 순분씨도 힘내세요. 코로나가 끝나면 어머니와 손을 잡고 쑥 캐러 같이 가고 싶어요. 그땐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쑥개떡을 만들어 드릴게요.


엄마, 고마워요. 저를 볼 때마다 아직 반가이 맞아주셔서….


2022년 여름에 큰딸 드림




2022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일반부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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