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고등)부 은상 - 김한비
아빠, 안녕 나 막내딸이야.
평소 직접 할 수 없던 말들을 편지로 써보려 해. 몇 년 전 아빠가 평생을 함께이길 약속한 사람과 이별을 맞이하고 티는 안 내려 한 것 같지만 하루하루 지쳐 보였었어.
물론 아빠는 나와 오빠한테 미안하단 말만 내뱉었지만, 우린 이미 예상했던 터라 상관없었어.
날마다 눈치 봤었는데 이젠 집안 분위기가 흐트러질 일이 없다는 것에 오히려 더 괜찮았던 것 같아.
다신 안 볼 사이도 아니고 둘이 친구처럼 지내던 모습이 같이 살던 때보다 좋더라.
5월쯤 전주에 볼일이 있어서 세 식구가 전주로 갔는데 일 보고 난 후 엄마 집에서 다 같이 하루 자고 온 날, 그날 행복했어.
다 같이 밥도 먹고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하루 동안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좋았어.
둘 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행복해 보여서 나까지 기분 좋더라.
난 친구들이랑 있을 때 웃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웃겨서 웃는 거랑 행복해서 웃는 거랑은 다르더라.
생각해 보니 내 평생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내 편이던 아빠가 평생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더라.
남들 연애하는 거 보면서 날 사랑해 줄 남자는 어디에 있나 하고 있던 찰나에 그게 다 소용이 없어지더라.
아빠라는 남자가 내 곁에서 날 책임져 주고 있는데 익숙함이 무뎌져서 다른 먼 곳에서만 행복을 찾았나 봐.
언제나 내 편인 아빠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까지도 상냥할 순 없지만 옳은 건 맞다 그런 건 아니다. 하고 이성적으로 늘상 말해준 아빠 덕에 정신력이 강해졌는지 다른 데서 상처받지 않게 되더라.
근데 이렇게 강해진 정신력도 깰 수 있는 건 아빠뿐이야.
남들이 나한테 아무리 쓴소리, 모진 말 해도 듣지도 않는데 아빠랑 싸울 때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당연히 항상 나만 바라보고 내 편이었던 사람이 나랑 갈등이 생긴다는 게 너무 서럽더라.
그만큼 나도 아빠 많이 사랑하나 봐
내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딸도 아닌데 내가 선택한 길 믿어주고 내가 준비 될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평범한 집안에서 나를 왕족 딸내미로, 공주님처럼 여겨줘서 고마워. 어디를 가던 옳고 바른 우리 아빠 언제나 자랑스러운 우리 아빠, 나 밝은 사람으로 잘 키워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