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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Oct 25. 2023

존경하는 외할아버지께

청소년(고등)부 은상 - 정윤서

안녕하세요? 외손자 윤서입니다.

올해도 곧 한 달만 있으면 외할아버지께서 정성 들여 키운 복숭아들이 첫 수확을 시작하네요.

외할아버지, 뜨거웠던 작년 7월에 외할아버지께서 일하시던 모습을 제가 영상으로 찍어 드린 거 기억나세요?

요즘도 엄마와 가끔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한답니다.

제가 공부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고 있으면, 엄마는 늘 “더운 날 청도에 가서 외할아버지께서 복숭아 농사짓는 거 하루만 보고 오면 공부가 얼마나 쉬운지, 외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대단한지 알 거다.”라면 매번 말씀하셨어요. 촬영하면서 외할아버지를 많이 존경하게 되었어요. 이 년 전, 외할아버지께서 전지작업하시다가 크게 다치셨을 때 엄마와 이모가 전화 통화하시는 것을 우연히 들었어요.

“ 복숭아가 아버지한테는 즐겁고 보람되게도 해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 연세도 있으셔서 걱정이다. 농사를 짓지 말라고 계속 말씀드려도 안 들으시고... 언젠가 아버지께서 복숭아 농사를 그만두었을 때는 그 상실감도 크실 것 같다. 나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농기구만 봐도 마음이 복잡하더라.” 엄마의 전화 내용이 걱정으로 넘쳐날 때 제가 외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이모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봤었어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사진 촬영과 영상으로 담아 우리 가족들 밴드에 올려서 두고두고 보고 싶었거든요. 엄마와 이모는 손뼉까지 치시면서 좋아하셨는데, 솔직히 외할아버지께서 쑥스럽다고 손사래 치실까 봐 걱정되었거든요. 외할아버지께서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밭으로 향하는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촬영할 때 만감이 교차했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엄하고 강인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영상 속에 비친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치 농부의 인생이 묻어나는 느낌이었어요. 내 몸보다 흙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농부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그런 멋진 아우라가 느껴졌었어요.

외할아버지의 목에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수건과 옆에서 묵묵히 손발을 맞추며 바쁘게 일하시는 엄마와 이모들을 보면서, 서로를 애틋하게 위하는 마음들이 진심으로 다가왔었어요. 

수명이 다되어 열매 맺기가 힘들어 메마른 가지만 손 내밀고 있는 복숭아나무를 보시면서 내 모습 같다고 웃으시며 농담처럼 말씀하시고는 이내 “이 나무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일부러 이 나무를 캐 내지는 않을 거다.”라고 말씀하셔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잦아들었어요. 복숭아 농사가 할아버지의 인생길과 같았구나 싶었어요.

외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낡은 농기구와 이름이 적힌 사다리, 낡아서 구멍이 난 장갑들을 보면서 외할아버지의 고단했지만, 많이 의지하면서 자부심으로 자리 잡은 농사일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들었어요.

외할아버지에게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저에게는 평범하지 않았던 하루가 영상으로 담겨 지금은 행복했던 추억으로 회자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저는 외할아버지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남들 눈에는 어수룩한 부지런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모든 사람이 다 공부로 성공할 수 없듯이 자신이 잘 할수 있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가길 바란다.”라고 하시면서 저의 꿈을 응원해 주셨을 때 기뻤어요. 외할아버지께서도 제가 사진과 영상을 전공으로 하려는 걸 듣고 이해하기 힘드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부모님이 저를 믿어주시는 것보다 더 든든함으로 다가왔어요. 외할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이모들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려고 시간을 낸 하루가 이렇게 우리 식구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네요. 

엄마는 “곧 뜨거워질 여름이 다가오는군!” 하시면서, 저에게 작년에 영상 촬영해 줘서 고맙다고 자주 말씀하세요. 엄마는 어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많은 추억들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어 행복하시다고 하세요. 저도 올해 대학 입학하고 나면 내년에는 손발 걷어붙이고 외할아버지와 추억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 복숭아밭으로 달려갈게요. 내년에는 더 많은 행복을 담아볼게요. 저도 외할아버지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외손자 정윤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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