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대상 - 손영애
신(神)은 봄을 연두와 환한 분홍으로 물들이더니 초여름의 문은 하양으로 여시나 봅니다.
산과 들에 산팔나무와 때죽나무의 하향은 그 빛깔로 발길을 멈추게 하더니 향까지 제 발걸음을 더 머물게 만듭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키도 크시고 용모도 준수하셔서 할아버님은 연세가 드셔도 늘 멋지셨어요.
할아버님이 제게 보여주신 모습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결혼 전에 결혼 후 칭호에 대해 가르쳐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친근한 표현으로 누구는 남편을 ‘아빠’, ‘오빠’라 하는데 ‘여보, ’당신‘이 올바르다.
그리고 그만큼 서로 귀히 여기고 살라고 말씀하셨어요.
남들이 있거들랑 서로 귀히 여기는 것도 조금 감추라고 하면서 그때는 서로 직업이 교사이니 ’선생’을 붙여 ’신 선생‘, ’손 선생‘이라 부르라고 하셨어요.
생각하면 어른이란 그런 것 같아요.
사소하지만 예의 있게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작은 칭호에서 나타날 수 있게 일깨워 주는 일이요.
막상 인생 주반의 나이가 되니 조용하면서 바람에 실려 오는 고운 향처럼 그렇게 일깨워 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 합니다.
마치 결혼 전 인사를 드리기 위해 풍남동 집을 찾았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해서요.
일부러 할아버님은 마당에서 제게 화단에 있는 여러 꽃과 나무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감이 크게 열린다는 대봉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감나무 있는 집이 부러웠거든요.
그거 아세요. 집을 새로 짓기 전까지 그 나무에서 나는 대봉시를 새벽이와 새봄이에게 흡족하게 먹게 했어요,
대봉시 하나가 그 큰 양푼에 담겨 새벽이 입으로 들어가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할아버님과 그 감나무가 같이 떠오른답니다.
제가 결혼을 잘했다고 느낀 건 언제일까요?
물론 신 선생의 온화한 성품도 한몫했지만, 할아버님의 전화 한 통이 제 일생에 잊히지 않습니다.
고창에서 저희 부부가 작은 방을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할 때 할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님과 정신적으로 힘드신 아버님이 마음에 걸려 있던 차라 늘 전주에서 전화가 왔다 하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지요.
신 선생이 전화를 끊고 나자 저는 물었지요.
할아버님이나 아버님 어디 편찮으시냐고, 아니면 뭐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냐고요.
신 선생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마당에 있는 모란이 꽃봉오리가 맺혀서 이번 주 토요일에 오면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네.
모란꽃이 피면 정말 예쁘니 이번 주 토요일에 와서 보고 갔으면 하시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결혼을 잘했구나.
모란꽃을 보러 오라는 전화는 처음이었거든요.
그 나이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요.
저도 한 번씩 할아버님을 흉내 내 아이들에게 초승달이 처연하게 예쁘거나 마당에 있는 상추라도 꽃과같이 싱그러우면 한 번 바라봐 주라고 말해줍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배 속에 새벽이 있었어요.
손주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 곁을 떠나셨죠.
할아버님이 떠난 이후로 어수룩한 어린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참 힘든 시간과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더라고요.
지금 말씀드리지만, 순간순간 모두 잘 해낸 건 아니었어요.
어떨 때는 참 못났다 싶을 정도로 저만을 생각한 결정도 있었어요.
그리고 화도 많이 냈지요.
직장 생활하면서 아이 넷을 키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한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간 아주 힘들어도, 고생스러워도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까지도 도망치거나 피하지는 않았어요.
늘 서서 밥 먹는 게 일상이었죠.
등에 땀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동분서주하며 키웠던 아이들도 이제는 다들 집을 떠나고 늦둥이 막내만 함께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제는 앉아서 밥도 먹고 한가롭게 마당에 서 있는 시간이 생기네요.
할아버님, 마당에 다시 대봉시를 심고 싶어요.
그리고 할아버님이 아끼던 모란도 심고 싶어요.
그게 뭐라고 아직 심지 않았냐고 말씀하실지 몰라도 제 마음은 그랬어요.
할아버님 마음처럼 여유 있게 모란 자체를 모란으로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때 심고 싶었어요.
사는데 바빠서 동동거리는 마음으로 모란을 심어둔들 그 모란을 제가 할아버님처럼 바라볼 수나 있었을까요?
그러니 이제는 심을 때가 된듯해요. 오히려 더 늦기 전에요.
심은 모란이 꽃을 환하게 보여주면 그때 가으내 아껴둔 늙은 호박으로 할아버님께 호박죽을 끓여드리고 싶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대청이 넓은 마루에 앉아 마당에 환하게 핀 모란을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뜨끈한 호박죽을 드시는 할아버님을요
어린 손주며느리가 이제는 제법 김치도 잘 담근답니다.
제가 담근 김치를 자잘하게 썰어서 드릴게요.
초여름을 알리는 이 하양마저 빛깔을 달리하면 배롱나무꽃이 하나둘 보이겠지요.
이 편지가 할아버님께 도착하면 어떤 답글이 올지 이 손주며느리는 벌써 기대가 됩니다.
할아버님을 다시 뵐 때까지 모란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겠습니다.
손주며느리 영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