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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Jan 20. 2022

웃는 것을 잊어버린 너에게

일반부 대상 - 현햇님

To. 웃는 것을 잊어버린 너에게


햇님아, 나는 오늘 모두가 휴가를 떠난 사무실에 남아 친구에게 사는 게 지겹다, 무기력해! 라고 메시지를 보내놓은 후,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좀처럼 봉합되지 않는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어. 스무 살 중반에 내가 했던 고민은 뭐가 있었을까. 서른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셋방살이를 전전하면 어쩌지. 언제쯤 계약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딸은 엄나 팔자를 닮는다던데(!)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어쩌지.


서른 살 중반을 넘어서며 느낀 건, 특별한 줄 알았던 나의 삶도 결국, 누구나가 다 말하는, 다 그러고 산다, 란 말속에 갇혀지게 되는구나.. 라는 서글픈 현실이었어, 하지만 평범함보다 나를 더 절망케 했던 건 다름 아닌 웃음을 잃어버린 나였어. 인생은 늘 배움의 연속이라지만, 웃음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인줄 알았으면, 내가 행복할 때 불행은 찾아온다는 징크스를 진작 없애버릴걸 그랬어. 아빠를 잃고, 나를 키워준 외할머니도 잃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삶인데 나는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왔을까?


10년 전쯤인가, 아마도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 2학기 전공수업시간이었던 것 같아. 흰 머리에 다소 지루해 보이는 뿔테안경을 쓰고 한 시간은 전공서적 위주로 수업을 하고, 한 시간은 학교 근처 전설이나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로 수업을 하시던 노(老)교수는, 졸업을 앞 둔 우리들에게 5년 뒤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자는 과제를 내셨어. 살아만 있다면(물론 농담이셨겠지?) 자신이 직접 5년 뒤 편지에 적힌 주소로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야.


각 잡힌 신입생들만 봐도 코웃음이 나왔던 나는, 다음 달이면 직장인이 되게 생겼는데, 유치원생들처럼 편지나 쓰고 앉아 있어야겠냐고 친구들을 쿡쿡 찌르며 빈정거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버렸지. 졸업 후 사이버 대학교의 유아교육과에 편입을 해 유치원 교사가 되겠다던 친구가 1층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온 편지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연습장 현 켠을 북 찢어서 안녕? 잘지내? 그래 잘 지내. 하고 무성의하게 편지를 썼을 수도 있겠다. 


그 편지는 정확히 5년 뒤, 아빠가 긴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셨을 무렵 나에게 도착을 했지, 그리고 그때 나는 내 스스로가 내 자신을 위로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어. 학교 내 현수막이 붙을 정도로, 글 쓰는 것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장난스레 5년 뒤 나에게, 야 현햇님 네 꿈을 응원한다, 넌 분명히 잘될거야. 라고 써놓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서글프고 가슴 설렐 일이였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편지 마지막장엔 내 글씨와는 다르게 점잖은 글씨체로 한 줄이 써져 있었는데, 그 말이 못내 서러웠던 건, 그 날은 가장 친한 친구의 등단소식을 접했던 날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나는 계속 힘든 일만 생기는 데, 주변 사람들에겐 웃을 날이 마르지 않아 보였거든.


꿈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편지를 읽고, 정말 오래간만에 노트북을 열었어.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닫았을 때가 언제였던 가. 아마도 희망찬 내 미래와 함께 써내려갔던 이야기들이 신문사 막내 기자의 손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가며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을 무렵이었을까? 그래 그때 였을거야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배웠던 것도 말이야.


그래서 현햇님이란 이름 대신 현주임이란 직급을 달고 아침에 출근을 해 자금일보, 세금계산서와 씨름하고, 거래처에서 발주서를 받아 제품을 포장해 우체국에 가 배송하는 일을 하며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다. 하고 나를 위로했는지도 모르지. 웃음을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난 내 반복적인 노동에 감사해. 냄새나는 곱창을 손질하며 그래도 이 곱창이 내 새끼들 핵교도 보내주고 배도 안 곯게 해줬다고, 행복해하던 엄마처럼 말이야.


평소 컴플레인이 심한 거래처에 택배를 보내며, 안에 거래명세서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기억이 안나 불안한 마음에 퇴근길에 우체국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친절한 직원의 확인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다음날 초콜렛을 사들고 우체국에 갔어. 우체국 직원은 수줍게 초콜렛을 받아들며 내 손에 편지쓰기 공모전이 담긴 책자를 내밀었어, 입사 초에 내가 제품 택배와 함께 보낸 문학 공모전 우편물을 관심 있게 보았던 모양이야.


나는 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꿈은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거야. 나 좀 봐줘, 햇님아, 우리 다시 한번 손잡고 함께 가보자 하고 말이야.


햇님아, 너는 또 다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5년 뒤 네가 이 편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적어도 세무사 사무실 직원의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거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혀를 내두르는 지금 일상보단 훨씬 값질 거라 생각해.


바로 어제 저녁 일이었지, 여름 내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슬랙스 바지 주머니가 찢어져 꽤 난감했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엄만 빨래를 개며 반짇고리를 찾아와 내 바지를 기워주셨어. 검정색이라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어찌 발견하셨는지 아직도 신기해.


순간 깨달았어, 비록 지금의 내 인생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언젠가 어둑한 학교 도서관을 나서며 했던 다짐처럼, 나의 이야기가 초승달처럼 납작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봉긋하게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 말이야.


햇님아, 내일 날씨는 어떨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까? 바람이 불까 급격한 추위가 찾아들까. 기상청 검색은 금지!(헤헤). 잘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내일 너의 얼굴이 어떨지 알아. 맑겠지. 그리고 활짝 웃을 수도 있겠다. 햇님아, 우리 아빠가 지워주신 이름처럼 찬란하게 살자.


그리고 지금껏 살아 있어 줘서, 버텨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 너의 가장 친한 벗 햇님올림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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