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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시 Jan 15. 2023

명절 형님댁을 방문하면서 느낀점

반성

어머니가 70이 넘어가면서

몸을 움직이기 많이 버거워하셔서

형님들의 제안으로 4형제 돌아가며

설명절을 맞이한다.


그 사람의 집을 가면

아무래도 가족이라도

빈부의 격차? 삶의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이번에 방문한 형님댁은 셋째형님댁

아무래도 아주버님이 의사이기에

아주아주 잘산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못산다고 할 수 없는 직업이다.


좋은집에 거주하는것은 당연하고

그건 둘째치고 놀란점은


하룻밤 자면서 느낀건

살림살이가 모두.. 거의 10년이상 쓴 제품들이다.

그냥 작은 소품들도 한번사서 제대로 망가질때까지 쓰는 스타일인게 보였다.

그러다보니 살림을 많이 안사서 집이 깔끔하고

산것을 갈고 닦고 아껴쓰니 집에 있는 모든 소품들이 그 집과 하나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집이 넓어서 소품을 모아두어도 적어보이는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제 고딩이 된 아이들의 크레파스등등도 버리지 않고 잘 안쓰는 수납함에 넣어두었다가

우리 아이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살림살이 하나하나 보면서 좀 놀랐다.

미싱 취미가 있으셔서 실수납장등은 좀 좋은 고급을 쓰실 줄 알았는데

오래된 약 수납함을 이용하여 실들을 깔끔하게 넣어두신거 보고..

오히려 더 멋지고 대단하고 고수같아 보였다.

장비빨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줄 것 같은 느낌...

곳곳에 형님이 손이 닿는곳은 정성들여 살림을 가꾸고 있었다.


솔직히..

의사면...

이것저것 사는것에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돈은 아이들이 악기를 다룰 수 있는곳에 투자한다던지

더 가치있는곳에 투자를 하셨던것 같다.


집은 지금 당장 업그레이드 할 수 없기에 집에 대한 부러움은 갖지 않았지만..

그 소비의 방향성에 대한 것을 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배울 수 있는것들이 많은 형님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집에 대한 생각..

난 솔직히 집에 대한 욕심이 결혼전 없었다.

친정집 40년 넘은 오래된 빌라이지만 볕이 잘들고.. 물난리가 없이..

30년 살았던 집이기에

빌라던 아파트던 다 좋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똑같은 부지에 20 몇층까지 있는 아파트보다 3층만 있는

빌라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신혼초에도 집이 부끄럽지 않아 교회사람들과 친구들을 계속 초대했다.

그냥 집이 좋았다.


그런데.. 5년간 살면서 작고큰 물난리를.. 5번이상 겪으면서..

난 이집이 너무 싫어졌다.

소나기나 폭우가 쏟아지면 또 역류해서 창고와 옷방을 덮을까봐

새벽 4~5시에 꺠서 옥상을 올라갔다 오고..

새벽에 자다가도 배수관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면 혹시 역류하는건 아닌지 두려워하며 잠들었다.

몇번의 물난리로.. 장판은 곰팡이 천국이 되고 그 공간에 아이를 키워야 되는

나의 가난이 싫었다.

집 창가 앞뒤가 다른집들로 막혀있어서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고 맞바람도 치지 않아

물난리후 곰팡이들의 천국이 되었다. 


여러번 물 난리를 겪은 그 이후 나는 내 집이 부끄러워졌다.


결혼후 처음 친정을 초대했을때도..

엄마는.. 이집이 너무 안좋다고 하셨다..

빛도 안들고 .. 이 집오기전에 자기가 꿈을 꿨는데 항아리에 물이 자꾸새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너무 그 말도 싫었다.

물난리를 겪을때마다.. 우는 나의 모습을 아는 친정언니도..

그런일을 겪은일을 하소연할때마다 다른집을 샀으면 좋겠다고 권유하는 말도..

이집에 살다가 물려주신 시어머니도.. 너희 계속 그 집 살면 안된다며 아파트도 알아보라며 말씀해주시고..

이 집을 나갈때.. 방범창을 행주시는 모습보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사시는 동안 2~3번 도둑이 들었던 집이기에 어머니는 걱정하는 마음에 방범창을 해주고 가셨다.

많은 일들로 나는 이집이 부끄러워졌다.

초대하고 싶지 않았다.


일년에 물난리를 2~3번 겪었을때...

안방이 곰팡이로 도배되었을때..

남편에게 대출을 해서 이사를 권했지만..

그 빚을 어찌 갚냐고 여기 머물기를 원했다.(둘이 합쳐서 4~500만원 꾸준히 벌면 되는건데 남편은 그걸 자신할 수 없었던것 같다. 코로나 시기였기에 그게 불가능한 시점이였어서 더 불안해서 그랬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런 단점이 있지만..

다른집은 또 다른 단점이 있을꺼라며 여기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갖고 계신 집을 언젠간 우리 살라고 하셨다며 그 집을 기다리는 모습이 싫었다.

분명히 우리가 스스로 개척해서 얻어낸 집이 아니라면 그 댓가를 우리가 치르게 되어있는데..

그걸 기다리는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지금의 집도 싫었다.

나도 돈을 많이 버는게 아니기에 무작정 대출을 받고 나가자고 할수도 없고..

남편이 코로나로 3년가까이 쉬면서 다른 회사를 나가라고 강요하지도 못한 나의 모습도 싫었다.

어느순간 이 집은 내 싫은 모습의 집합체가 되었고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아 초대하지 않는 집이 되었다.


근데.. 그래봤자 우리집인걸.

지금은 내가 개선할 수 있는걸 집중하자.

그냥 집이 싫으니 자꾸 집안에 다른걸 채우려고 하고..

다른걸로 무엇을 보여주려하니 쓸때없는 소비가 더 많아지는것 같다.


나의 현재 소비를 바라보고 

좀 줄일것들 줄이고.. 집이 필요하면 집에 필요한 준비를하자.

그리고 어머니의 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댓가가 없이 받는것이 아닌

그에 맞는 돈을 드릴 수 있게 준비를 하면 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부끄럽지 않게 지금의 소비들을 재정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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