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서 Jun 04. 2018

성장:의심이 들 때 무너뜨리는 스스로의 세계

<데미안> 헤르만 헤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3월 중반부터 저는 중학교 아이들과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일명 '병아리 부화 프로젝트'입니다. 작년 <그녀는 왜 돼지 세마리를 키워 고기로 먹었나>라는 책을 읽고 시작된 아이들의 의문이 급기야 실제로 무엇인가를 부화시켜보겠다는 프로젝트로 이어진 겁니다. 유정란을 구하기 위한 우여곡절과 부화기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실패, 그리고 8시간 마다 알을 뒤집어 주어야 하는 정성까지... 보통 정성이 드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가은이가 요란스럽게 교무실로 뛰어왔습니다. 

"쌤쌤쌤, 알에 금이 갔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장난을 치시느라,

"그거 누가 만지다가 살짝 깨진거 아냐?"했습니다.

"아녜요! 누가 만져서 그럼 요~렇게 금이 가야 하는데 이건 세로로 자작작 하고 이렇게 금이 가있다고요!"가은이는 금이 가있는 모습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기뻐했습니다. 

뒤이어 채원이와 준화도 따라 들어와 교무실은 온통 북새통이 되었습니다. 

언제 깨어날 지 모른다며 그날은 아예 부화기를 옆에 두고 자겠다고 합니다. 

이틀뒤, 아침 일찍 사감선생님께 카톡이 날라왔습니다. '냠냠이'(계란에 붙여준 이름 중 하나)가 부화했다는 겁니다.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빛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자신의 주변에 어둠의 세계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데미안이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넌 너의 '허용된'세계가 단지 세상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 그리고 목사님이나 선생님처럼 너도 두번째 세계를 감추려 했지. 그렇게 되진 않을거야! 그런 생각을 시작했다면 그 누구도 감출 순 없어.

싱클레어가 스스로 금지하고 있는 세계를 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살아내며 생각하는 것들을 감추지 말고 믿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가은이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기에 결혼에 대한 거부가 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깨어난 병아리가 온 우주를 돌아다닐 듯한 생기로 울어댑니다. '삐약삐약' 아직 육추기를 만들지 못해 교실에 두고 있기에 작은 생명의 울음이 가은이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교감 선생님께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저 결혼 안할 생각이었는데 꼭 해야 할거 같아요."라고요. 


알에서 깨고 나온 것이 병아리였을지 가은이였을지, 싱클레어였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보고 하게 된 생각, 누구에게 들어 가지게 된 생각이 아닌 자신이 경험하여 만들어가는 생각이 스스로 알을 깨고 신에게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것만 같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하실 오늘의 삶이, 단단한 껍질을 향해 부리질을 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아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