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 탁구공이 얼마나 들어갈까요?" 우리가 아는 그 구글의 면접 질문 중에 하나다. 구글 외에도 굵직한 기업에서 정답이 없는 문제의 정답을 요구한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이것이 실제 업무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또 공부를 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적절한 사고 프로세스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가를 보는 것이 핵심이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구글에서도 대부분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른다고 한다.
페르미 추정 / Fermi Estimate
페르미 추정은 페르미 문제 또는 게스티메이션이라고도 불린다. 앞 서 말한 구글의 면접 질문을 푸는 방식을 뜻한다. 문제를 기초적 지식과 논리적 추론으로 짧은 시간 안에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이탈링 물리학자인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비슷한 문제의 예로는 '서울 시내 영화관의 수는 모두 몇 개인가?' '우리나라 1년 판매 치킨 수는 어떻게 되는가?' 등이 있을 수 있다.
기업 면접 시 페르미 문제를 출제하여 면접자의 당황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 서 말한 논리적 추론을 보는 것은 결과값이고 그 근간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있다. 경제나 사회 문화적으로도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많은 사람들이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일어난다면 러시아가 수일 내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 우리는 당장의 앞 날도 쉽게 예견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물론 거창하게 국제 정세로 나아갈 필요도 없이, 특별한 약속이 아니라면 일요일 점심은 뭐 먹지 고민하는 우리에게 페르미 추정이라니.
너무한 감이 있지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빠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 확보를 위한 기업의 강구책이다. 심지어 디지털 환경은 어떠한가. 급격한 기술 발전은 세상을 바꿨고, 바뀌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터치가 되는 스마트폰이 신기했다. 이제는 접고 말는 시대가 도래했다. 게다가 메타버스는 어떠하고 NFT는 어떠한가. 구글이나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기업이라면 더욱더 페르미 인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페르미 추정은 정확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타당성을 본다. 그래서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창의의 부분까지 한 번에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직 관리에서의 페르미 추정 활용
조직 관리를 하다 보면 정량화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당연한 것이 한 사람을 측정하고 평가하는데 '숫자'로만 되기 어렵다. 드레곤볼에서 나오는 전투력 측정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수백 번도 한 것 같다. 'A팀원의 능력은 43523입니다.'라고 얘기해준다면 인사 리소스가 굉장히 줄어들텐데 말이다.
출처 : 드레곤볼
아쉽게도 우리에겐 전투력 측정기는 없다. 머리로 정성적인 능력치를 정량화해야 한다. 이미 관리자까지 올라선 우리가 '면접'에서의 당황스러운 페르미 문제를 들을 필요는 없겠지만, 관리자로서 숙명적으로 조직원의 정성을 정량으로 바꿔야 하는 페르미 패러독스에 빠지고 만다. 그나마 희소식인 것은 보통 인사 평가는 1년에 한 번이기 때문에 1년짜리 페르미 문제를 풀면 되는 것이다.(하지만 내가 재직하던 이전 회사는 1년에 평가가 두 번이었다....)
각 사에서 인사 평가를 위해 활용하는 목표관리법은 차이가 있다. 일단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내가 재직했던 회사들이 사용했던 MBO(management by objectives)를 기반으로 생각해본다. 먼저 MBO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면 평가에 있어 결과를 중시하는 목표 관리법이다. 목표와 결과의 1:1 매칭을 통해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가 평가에 중요한 포인트다. 예를 들어 개인 목표 매출 30억 달성이라는 목표를 정했다면 30억 달성 여부에 따라 평가를 진행하면 되는 결과 중심적 목표 설정법이다. 정량적으로 평가 관리가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많은 회사에서 차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MBO에는 정성적 평가가 주관적이라는 맹점이 있다. 과정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 부분은 평가를 주관하는 조직장의 주관적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0억 목표 매출에 똑같이 40억을 한 A와 B가 있다고 하자. 하지만 상대 평가로 누군가는 등급을 낮춰서 B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면 누구를 내릴 것인가. 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많은 조직장은 '감'으로 판단한다. 물론 '감'이라는 것의 기반은 일 년 동안 팀원들과 부둥켜안고 지난 조직장이기에 정확도가 높은 편일 테다. 다만 정확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Z세대에게는 차츰 조직장의 '감'은 무능력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1차 팀장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은 사람이 2차 실장 평가에서 B등급으로 감점되었다. 평가자였던 팀원은 실장 면담에서 이유를 물었다. 실장에게 들었던 피드백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는 이유였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은 MBO 항목에 없었거니와 회식 참여가 저조했던 평가자에 대한 실장의 경고 아닌 경고였던 것이다. 팀 매출 1위에 사소한 실수도 없었던 평가자는 회식 참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었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조금 극단적인 예이며 MBO 항목에 없던 평가 내용을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것 자체가 실장은 조직장으로는 실격이었다.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도, 애매한 부분에 대하여 정량적 피드백이 필요한 경우 조직장은 정답 없는 문제에 답을 내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구글 면접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구글 면접장에 앉아있고 비행기 안에 탁구공이 얼마나 들어갈지 고민을 한다. 앞 서 말했듯이 답은 없다. 기초 지식과 논리적 추론이면 된다. 마찬가지로 정성적 평가에 있어 정량화를 할 때 답이란 것은 없다. 기준만 있으면 된다. 이제부터 내가 평가에 있어 사용했던 페르미 추정 방식을 소개한다.
먼저 '기준' 필요하다. 물론 '감'도 좋지만 피드백을 할 수 있을만한 근거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내 경우, 5가지 항목을 구글 시트에 업데이트했다. 매출 및 교육 참여 등 정량적으로 체크가 되는 부분은 제외했고 실제 정량적으로 업무 참여도나 팀 내 기여도 등을 측정하기 위한 기준 항목들이다. 다섯 가지는 미팅 횟수, 지각 횟수, 순매출 참가, 긍정 행동, 부정 행동이다.
각 기준 항목은 맘껏 바꿔도 된다. 말했듯이 기준만 된다면 된다. 미팅이나 지각, 순매출 차감 횟수와 금액은 정량적으로 정확히 떨어지는 값이다. 이를 통해 동일 점수에서 등급이 갈리는 경우 차순위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긍정 행동, 부정 행동은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성적인 행동을 일일이 업데이트했다. 예를 들어, A팀원이 B팀원의 업무를 도와 일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면 A팀원에게 긍정 행동 포인트가 적립된다. 반대로 A팀원과 B팀원 사이에 불필요한 언쟁으로 팀 분위기를 저해했다면 서로에게 부정 행동 포인트가 부여된다. 이 긍정과 부정 행동 포인트가 정성적 평가를 정량화하는데 굉장히 유용하다.
MBO에는 팀 융화와 같은 애매모호한 항목이 있다. 이런 항목은 보통 조직장의 주관적 평가로 결정된다. 그리고 같은 정량적 점수 내에서는 주관적 평가로 등급이 갈리기 마련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평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제왕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고착될 수 있다. 내 평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내 능력과 행동이 아니라 평가를 하는 조직장의 맘에 드는 일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가는 실제 그들의 역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애매모호한 항목은 앞 서 말한 긍정/부정 포인트 등을 활용하여 정량화할 수 있다.
앞 서 말했듯 나는 일 년에 평가가 두 번 있었다. 중간 평가는 MBO에 맞춰 진행 상황을 평가하는 것으로 해당 시점에는 모든 팀원에게 동일한 '보통' 수준 평가를 부여했고 간단한 면담으로 대체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평가는 연봉협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면밀히 평가하고 면담했다. 나는 평가 점수 작성 자체를 한 달 정도 기간을 잡고 진행했다. 팀원도 14명으로 많았지만, 한 명 한 명 정성, 정량적으로 모두 다른 퍼포먼스를 내었으나 동일한 메시지를 줄 수 없기 때문에 개별 메시지를 편지 형식으로 초안을 작성하는 작업이 다소 걸렸다.
개별 인원에게 보통 5줄~10줄 사이의 서면 피드백과 함께 1시간~2시간 정도 개별 면담을 통해 평가 피드백을 했다. 그리고 그 면담 내용은 정량적으로 평가 가능했던 매출이나 근태, 교육 참여 등으로 채웠고 그 외 측정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량화하여 설명했다.
지금까지 오면서 단 한 명의 평가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점수에 대해 인정하고 향후 성장 포인트에 대하여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평가자의 경우, 가장 점수가 낮았던 팀원으로 본래 팀장을 맡기기 위해 육성하는 팀원이었으나 리더십 부분에 있어 부족함이 컸었다. 초반 MBO에도 팀장으로서의 목표를 설정해주었으나 결국 정성적인 부분에 대한 인식 차이가 발생했었다. 팀워크 부분에 있어서 나는 주체적인 역할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평가했으나, 그는 아직 팀장이 아니기 때문에 주체적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기준의 차이는 바로 불만으로 이어짐을 새삼 느끼는 계기였다. 결과는 그 팀원은 팀장 승진은 어려웠다. 팀원으로서는 내 점수가 틀렸을 수 있으나, 팀장으로서는 그의 행동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해당 팀원을 제외하고는 면담을 통해 내년 성장 포인트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내가 지원해주어야 할 부분까지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고 매 해 우리 팀은 매출 및 개인 능력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
데이터 마케팅에 있어 자주 인용되는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다. 조직 인사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없다면 적재적소 인재 배치 및 평가가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정성적 항목이라도 측정 가능한 정량적 수치로 치환해야 한다. 능력을 수치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추정치를 만들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조직장으로서 역할이다. 여전히 '감'으로 조직원을 평가하고 있다면 이제는 '수치화'된 능력 평가를 통해 조직원을 관리해보자. 좀 더 해당 인원들에게 밀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되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