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로서, 또는 상사로서 경험에서 나오는 진심 어린 이야기는 중요하다. 후배나 부하 직원에게는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그 말 한마디가 영감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배나 상사는 영감을 주기는커녕, 영감 소리 듣기 십상이다. 말하는 화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받는 청중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일 테다.
출처 : TvN 유퀴즈
청중과 화자의 벽이 높은 상황에서 조언은 100%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직장 내에서의 조언은 행동변화를 촉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특히나 반발을 사기 쉽다. 기존에 해온 행동 습관이라는 것은 듣는 청중뿐 아니라 화자 역시 바꾸기 어렵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기적에 가깝다. 그렇다면 잔소리가 아닌 조언으로서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가장 먼저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미 단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잔소리는 '소리'다 소리의 뜻은 <물체의 진동으로 생기는 음파>나 <사람의 목소리다> 즉,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음파다. 게다가 잘게 쪼개어 굉장히 귀에 거슬리는 음파다. 화자는 많은 의미를 내포했지만 청중에게는 의미 없이 거슬리는 음파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피곤한 주말 이른 오전에 들리는 개소리 같은 것이다. 반대로 조언(助言)은 도울 조, 말씀 언 한자를 쓴다. 직역하자면 말로 돕는다는 뜻으로 국어사전에는 말로 깨우쳐 돕는다라고 한다. 앞 서 말한 말 한마디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말로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기적에 가깝다.
단어의 시작점부터 잔소리와 조언은 큰 차이를 보인다. 두 번째 말하는 방법에서도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청중의 차이가 날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어떻게 말하냐에 따라 청중은 같은 메시지를 '아'와 '어'로 나누어 듣는다. 그 어떻게는 말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꼰대를 설명하는 대표적 단어 중에 '라테는~'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을 비꼬아 표현한 말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화자로서 내가 대화를 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내용이다. 앞 선 포스팅에서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시너지를 내는 방법에 대하여 쓴 적이 있었다. 물론 경험에서 나오는 짬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지금 시대에도 적용되는 것인지는 스스로 반문하고 말해야한다. '라테는'이 시작된 이유는 이제는 필요 없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궁금하지 않은 '화자'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청중이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청중은 화자의 무용담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나아가 청중과 화자의 신뢰 관계 역시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를 만든다. 똑같은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도 신뢰 관계가 부족한 경우 청중은 잔소리로 치부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다. 약간 다른 조사이기는 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Deloitte)에서 2022년 글로벌 마케팅 트렌드 보고서를 발표했다. 마케팅 트렌드 7가지를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기업과 소비자의 신뢰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지는 그렇다. 쿠키리스(Cookieless) 시대에서 소비자 데이터를 받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행동 유도가 중요하다. 때문에 어느 시대보다 더 돈독한 고객 신뢰를 통해 '먼저' 고객이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쿠키리스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기 바라며, 쉽게 말해 고객과 친해져야 고객이 행동한다는 것이 골자다. 조언 역시 목적이 청중의 행동 변화라면, 그와의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공자 맹자 부처님 하느님 좋은 말씀을 전달해도 길 가다가 만나는 '도를 아십니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신뢰는 행동에서 시작한다.
앞 선 내용은 위부터 거슬러 정리해본다. 1) 화자와 청중의 '신뢰'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2) 화자는 자신의 메시지가 올바른지 '체크'해야 한다. 그러면 3) 청중은 화자의 메시지를 '조언'으로 인식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작점은 '신뢰'다. 구구절절 풀어서 썼지만 내가 이 아티클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아티클에 하이라이트를 처음 쓴다. 그만큼 조직생활에서의 신뢰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제부터 신뢰를 쌓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했다고 해도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도 않거니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내해야 한다. 왜냐면 리더니까. 팀장이니까 말이다. 이제야 밝힌다. 우리는 청중이 아니라 화자다. 말하는 사람이고, 청중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모르겠더라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자.
경험이라는 것이 주는 단점 중 하나다. 나만의 고집이 생긴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집이 된다. 화자는 자신의 메시지가 올바른지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올바른지는 그 시대의 트렌드에서 고민해야 한다. 갑자기 글로벌 이슈로 넘어가 본다. 환경 보호가 각 기업과 국가에 요구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보호에 대한 이슈가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국가 간 마찰도 있다. 이미 석탄 연료로 성장한 소위 선진국들은 모든 국가에 탄소 절감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제 막 개발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말한다. '너희가 다 환경 파괴하면서 성장한거잖아^^? 우리는?" 화자와 청중의 골이 너무 깊다. 두 이해집단의 대립은 실리 관계에 따라 좁혀지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신념과 아집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환경 보호라는 거시적 목표에 대해서는 어느 국가나 동일하다. 하지만 피해를 감수하며 행동 변화를 해야 하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행동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필요성을 느껴도 실리적인 판단에서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화자인 선진국도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환경 보호를 함께 실천했을 때 개발도상국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하여 물질적, 정신적인 충분한 서포트를 함께 해주어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만약에 선진국이 라테는~ 어쩔 수 없었고, 너희는 지금 이렇게 해야 해!라고 강압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말해 뭐해. 단절의 '시작'이 될지 모른다. 환경 보호는 공통적인 목표에 대한 예시이기 때문에 되려 쉬운 문제일 수도 있다. 심지어 목표마저 다른 경우에는, 그리고 화자가 트렌드를 무시한 채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에는 파국이다.
신념은 그런 것이다. 행동에서 시작이 된다. 선진국이 환경 보호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고 개발도상국 역시 환경 보호에 대한 트렌드에 의견이 합치되었다면, 먼저 움직여야 할 것은 개발도상국의 환경 보호 정책이 아니라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지원 정책이다. 화자의 행동이 말의 힘을 실어준다. 글로벌 이슈에서 다시 돌아와서 조직장과 조직원의 이야기를 해본다. 신뢰는 조직장의 '행동'에서 시작된다. '행동'의 결과는 곧 조직장의 신념을 보여준다. 구태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행동의 결과에 따라 '이렇게 하면 돼' 한마디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념의 중첩은 신뢰가 된다. 신념과 아집을 구별하는 것은 내 생각이 지금 트렌드와 맞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이라면, 신뢰를 쌓는 과정은 행동 반복을 통한 결과로써의 입증이다.
트렌드와 행동에 입각한 '말'은 조언이 된다. 앞 서 차용한 TvN의 차승원 배우의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에 대한 연기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표정만으로 말이다. 표정이라는 행동이 공감을 얻게 되니, 결국 시청자들은 '역시 차승원'이라는 결론을 낸다. 연기자는 연기로 이야기하고, 조직장은 행동으로 이야기한다. 말이 먼저 앞서는 조직장이라면 심각하게 한번 반성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신념의 중첩을 위해서는 행동은 일상이 되어야 한다. 차승원 배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 스펙트럼을 돌이켜보자. 이것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그 경험을 먼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잔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경험'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글을 마무리하며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