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터뷰1. 돌고 돌아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필자의 뮤즈이자 현재 비영리법인에 재직 중인 [통장잔고323원] 님과의 업터뷰
첫 직업은 뭐였죠?
게임회사 사무직이었습니다.
왜 게임회사에 취직했나요?
제가 디지몬 어드벤처를 좋아해서 1년에 한 번씩은 정주행합니다. 최애는 엔젤우몬이고요.
졸업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전공은 살리기 싫었어요.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일하는 사무직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디지몬 어드벤처 게임 회사에서 사무직을 구하더라고요. 전공도, 경력도, 자격증도 없지만 그냥 넣었어요.
이게 웬걸 합격을 해버립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갔죠. 제게 아무것도 없지만 의지가 보여서 뽑았다고 하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디지몬 어드벤처 OST를 컬러링으로 해뒀었거든요? 면접 보러오라고 전화 돌리잖아요. 거기서 점수를 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만둔 이유는요?
취직의 기쁨도 잠시, 매일 야근을 했습니다. 성동일 닮은 상사는 주말마다 책을 한 권씩 주면서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주말마다 한 번도 편히 쉰 적이 없어요. 물론 공부를 한 건 아니고 마음만 불편한 상태로요. 그런 상태로 평일이 되면 상사가 내주는 테스트를 봐왔습니다.
어느 날은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셨어요. 며칠 뒤 상사가 연차여서 없는 날이었는데, 본인은 없지만 보고서를 발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입사한 지 2주 만에 각 팀 팀장 10명을 모아놓고 신입사원 혼자 PT를 했습니다. 죽고 싶었어요. 이런 고난은 계속됐죠.
입사 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이 있었어요. 입사 한 달 차지만 연차 쓰고 갔다 왔어요. 출근해야 하는데 아픈 거예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픈 건 회사 때문이다. 얼마나 회사 가기 싫으면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몸이 아파서 회사를 못(안)가지? 이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3주하고도 3일 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화를 내실 줄 알았던 상사는 저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법카로 돈부리 먹고 퇴사했습니다.
다음 직장은 어떻게 골랐나요?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면서 문득, 대학생 때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던 일이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직장은 행사대행사를 다녀야지’라고 생각하고 퇴사했습니다.
다음 회사는 어땠나요?
행사대행사에 취직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했던 영화제나 대학 축제를 생각하면서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들어간 대행사는 컨퍼런스, 포럼 같은 재미없는 행사를 진행하는 곳이었습니다. 점점 흥미를 잃어갔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제안서를 써야 사업을 따오는데, 제 제안서 작성 능력이 꽝이었던 겁니다. 창의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죠. 저는 MBTI로 따지면 S가 100인 인간인데,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 힘듦이 있었어요.
두 번째 회사의 좋은 점은요?
회사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거든요. 제가 원래 강아지를 무서워하는데, 6개월간 일하면서 강아지를 안 무서워하게 된 게 그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지금 회사는 다닌 지 얼마나 되었나요?
2년 10개월 되었네요. 처음에 사무직을 하다가 행사대행사를 갔잖아요? 다시 깨달았어요. 나는 사무직이 맞다. 내가 배가 불렀다. 그리고 또 하나를 깨달았죠. 전 회사에서 이익을 추구해야 해서 부담이 컸는데, 이제는 이익을 취하지 않는 비영리법인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검색해서 찾은 곳이 지금의 회사였고요.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는 이유는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또, 돈을 벌어야 해서 이직하지 않는 이상 그만둘 수 없습니다.
이직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직할 만한 커리어가 없어요. 2년 10개월 동안 과장님이랑 농담 따먹기만 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야근을 많이 할 때도 있고, 거래처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죠. 그런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애정을 쏟아주는 게 보여서 ‘어디 가서 이런 사람들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유하자면 남자친구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못 헤어지는 느낌? 어디 가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 만날 수 있을까 싶은 거 있잖아요.
나에게 직업이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음.. 컴활 1급 실기? 너무 하기 싫고 실제로 크게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매일 출근해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찾아라 취업의 열쇠 미로같이 얽힌 면접들 현실과 또 다른 세상 취업문 뚫고 나가자 화이팅!
[그때 그 순간]
첫 직장 퇴사 날 먹은 돈부리입니다.
퍼온 거 아니고 제 네이버 마이박스 뒤져서 찾은 거예요.
-통장잔고 323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