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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ja Nov 10. 2024

Editor's Pick 아는 맛 너머의 와인



'아는 맛'은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아서, 

'모르는 맛'은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해서.

그래서 마신 와인들. 






빌라 안티노리 비앙코 2022(Villa Antinori Bianco)

동네 와인샵에 들르면 늘 새로운 와인과 익히 잘 아는 와인을 섞어서 사오곤 합니다. 빌라 안티노리 비앙코는 완전히 후자에 속하죠. 냉장고에 재고가 떨어질 때마다 습관처럼 사와서는 별다른 고민도 생각도 없이 꺼내 먹는 화이트 와인입니다. 피노 블랑, 피노 그리지오, 리슬링 등 여러 화이트 품종을 블렌딩했는데 오렌지 향을 베이스로 열대과일의 캐릭터와 약간의 미네랄을 풍기는, 전형적인 가벼운 바디의 이탈리아 라벨이에요. ‘그게 왜 그렇게 좋냐’고 물을 때 사실 답을 잘 모르겠고 그냥 좋을 때가 있잖아요. 요즘 이 와인이 저에게 그러합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 말바시아 비앙카, 피노 블랑, 피노 그리지오 등 블렌딩 | 1만원대 후반



보르고 델 틸리오 콜리오 비앙코(Borgo del Tiglio Collio Bianco)

한동안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료한 화이트만 고집했습니다. 피노 그리지오, 알바리뇨 같은 가볍고 깔끔한 와인을 올 여름 주구장창 마셨던 저인데요. 그런 제 입맛도 조금씩 다른 걸 찾기 시작하더군요. 조금은 더 바디감이 있고 버터리한 방향으로요. 간만에 만난 20년 지기 친구 H와의 저녁 시간, 그래서 이 와인을 골랐는데요. 바닐라, 버터 향이 꽤 강하게 감돌면서도 흰 꽃의 캐릭터와 미네랄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졌습니다. 솔직히 첫 모금에 ‘와!’는 아니고 ‘잉?’ 했지만, 뭐든 깊이가 있는 건 시간이 지나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입니다. 칠링이 되면 될 수록, 마시면 마실 수록 매혹적이었습니다. 치즈 플래터 중에서는 단짠단짠 카라멜 치즈와의 조합이 가장 기억이 남네요. 

이탈리아 | 소비뇽 블랑, 프리울라노(Friulano), 리슬링 | 5만원대


by. 감자 





필레인 프라스카티 수페리어 리제르바(Philein Frascati Superriore Riserva)

로마의 어느 로컬 식당에서 만난 보석 같은 화이트 와인입니다. 식사를 주문하고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직접 메뉴를 스윽 살피고는 이 와인을 추천하시더군요. 말바시아와 트레비아노 품종을 블렌딩한 화이트 와인인데요, 식사로 주문한 멜론과 프로슈토, 트러플 라구 파스타, 문어 구이 모두와 잘 어울려 모두를 와- 하고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살구, 복숭아 계열의 산뜻한 과일향과 함께 화사한 꽃향, 적당한 산도가 어우러져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제몫을 다했거든요. 손으로 직접 수확한 포도로 만든 유기농 와인을 이 가격에, 그것도 식당에서 마실 수 있다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말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와인을 계기로 줄곧 레드 와인파였던 저희 엄마가 화이트 와인 매력에 눈을 떴다는 TMI를 전합니다. 

이탈리아 |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 25유로



서브미션 카베르네 소비뇽(Submission Cabernet Sauvignon 2022)

제게 서브미션 카베르네 소비뇽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아는 맛’ 중 하나입니다. 블랙 베리의 검붉은 베리류 아로마 안에 감초, 오크, 바닐라 향을 차분하게 품고 있습니다. 수입 초기, 한때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라이징 스타 와인이기도 했고요.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정석을 갖추고 있지만 2만원대의 부담 없는 가격이라 비슷한 가격대의 새로운 와인과 함께 있으면 집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아는 맛’ 와인입니다. 저는 마침 지난 달 속초 여행 중 편의점에서 카드 행사 할인을 받아 약 1만 5,000원에 구매했는데요. 오랜만에 만석닭강정 매콤한 맛과 함께 룰루랄라 즐기고 왔습니다. 닭강정 양념이 와인에 비해 다소 세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이 조합, 저는 찬성입니다.  

미국 | 카베르네 소비뇽 | 2만원대


투핸즈 엔젤스 쉐어 쉬라즈(Two Hands Angels Share Shiraz)

지인의 새집 장만을 기념하는 자리, 와인이 빠질 수 없죠. 집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만두전골과 양지 쌀국수와 함께 평소 애정하는 투핸즈 엔젤스 쉐어 쉬라즈 한 병을 벅찬 마음으로 나눴습니다. 거칠고 파워풀한 느낌보다는 실키한 텍스쳐와 단단한 구조감이 장장 2시간 가까이 이어졌고요. 은은한 허브, 후추향이 기름진 국물 요리를 잘 잡아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복합적인 베리류의 진한 아로마가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풍미가 좋은 육류 요리와 함께하면 뭐든 좋을 것 같은데, 부드러운 연성 치즈나 고소한 견과류와도 제법 잘 어울릴 녀석입니다. 호주 쉬라즈의 명성이 궁금다면 주저 없이 이 와인을 택해도 좋습니다. 

호주 | 쉬라즈 | 4만원대


by. 여니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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