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이즈 본> X 카사솔레
드디어 그가 돌아왔습니다. 7년만에 컴백한 GD의 등장에 이 순간을 몹시 기다렸던 또래 팬으로서 ‘반갑다'는 말로는 한참이나 모자란 벅찬 감정이 든 한 주였습니다. 출퇴근길엔 귀에 사정없이 내리꽂히는 ‘POWER’를 들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위에서 그가 출연한 <유퀴즈>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죠. 그런데 벅찬 마음도 잠시, 저는 그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슬퍼졌는데요. ‘나다워서 아름다워'라는 ‘POWER’의 가사에서도,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유퀴즈> 속 토크에서도.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야만 했던 그의 고달픈 고뇌가 느껴졌달까요. ‘참, 스타는 어떤 면에서 못할 짓이구나.’ 그러니까 이 의식의 흐름이 이 레터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이렇게나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번 주 제가 소개할 영화가 다름아닌 <스타 이즈 본>이거든요. 스타의 삶, 그 이면에 따라붙은 지독한 우울감과 고독을 잘 표현한 영화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수퍼스타이지만 무대 뒤에서 알콜 문제와 어릴 적 기억으로 고통 받는 잭슨(브래들리 쿠퍼)과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무명가수 앨리(레이디 가가). 우연히 만난 앨리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잭슨은 앨리에게 공연을 함께 다닐 것을 제안하고, 이후 이들은 동료이자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앨리가 점점 인기를 얻으며 둘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설렘 반 호기심 반 메이저 코드에서 시작한 영화가 미묘한 감정선을 타고 마이너 코드로 치닫는 동안 저는 조금은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홀짝였는데요. 평소 스위트 와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이 때는 너무 드라이하지만은 않았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 때가 있잖아요. 세상 모든 게 날 못 살게 굴어도 뭐 하나만은 호락호락 순조롭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 이 영화를 보며 세미 스위트한 ‘카사솔레(Casasole)’를 을 페어링한 것은 아마도 그런 마음이었겠거니 짐작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진심으로 안쓰러워 했고 또 슬퍼졌거든요(F입니다). 저런 스타들마저 불행하다면 행복은 대체 뭘까, 꽤 철학적으로 심오해지기도 했고요. 행복해야 할 텐데 행복하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 와중에 달달한 입안의 와인. 그렇게 적당히 쓴 맛과 단 맛을 오간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이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유지되어 온 데는 아마도, 7할 정도는 OST의 공일 거예요. 저는 지금 <스타 이즈 본>의 OST 중 하나인 ‘Shallow’를 들으며 이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레이디 가가는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뭘까요? 글쎄요, 그렇게 유명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마저 저마다 괴로워하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구나 싶은 동질감이 들면서도,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다만 한 가지의 확신에 가까운 건 어떤 상황이든, 내가 내가 아닐 때 우리는 불행해지기 쉽다는 것이죠. 무대 위와 뒤의 내가 너무도 다를 때, 회사에서 가면 쓰듯 생활하는 내가 문득 생소하게 느껴질 때처럼요.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나는 오늘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답게 살겠노라, 다짐해봅니다. 나다워서 아름다운 밤입니다. 마시다 남은 카사솔레 1/3병도 냉장고에 아직 남았고요.
2024.11
Letter From 감자
2말3초를 여행매거진 에디터로 살았고, 지금은 어쩌다 IT 업계에 속해 있습니다. 일단 좋아하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반복으로 보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거북이, 돌고래, 초록 정원에 차려진 와인상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 중입니다.
개봉ㅣ2018, 미국
감독 | 브래들리 쿠퍼
출연ㅣ브래들리 쿠퍼(잭슨), 레이디 가가(앨리)
장르ㅣ드라마
한줄평ㅣ'감독' 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배우' 레이디 가가의 발견
산지ㅣ이탈리아, 오르비에토
품종ㅣ프로카니코, 그레게토
도수ㅣ10%
특징ㅣ과하지 않은 세미 스위트, 중간 바디, 배, 꿀, 꽃, 멜론
가격ㅣ2만원대
한줄평 | 기분이 씁쓸한 날 생각날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