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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ja Nov 17. 2024

쳇 베이커를 마시며 보내는 가을

<본 투 비 블루> X 섹슈얼 초콜릿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술, 담배 그리고 나쁜 남자.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건 나쁜 남자입니다. 나쁜 남자에게 한 번 빠져들면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 없고, 치료에 약도 없거든요.


나쁜 남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트럼펫 하나로 수많은 여심을 흔들었던 20세기 미국 대표 나쁜 남자, 쳇 베이커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그는 복잡한 여자관계에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마약에도 자주 손을 대며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던 진짜 나쁜 남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외모에 신비로운 눈빛, 끝장나는 트럼펫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뮤지션입니다. 게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런 그의 음악은 어딘가 어둡고 구슬프면서도 절제된 호흡에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 묘하게 섹시하고 중독적이죠. 그래서 가을에 시작해 겨울까지 죽 생각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쳇 베이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가 요즘 자꾸만 당긴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컷. 빠져든다, 빠져든다


저는 쳇 베이커를 담은 영화에 망설임 없이 '섹슈얼 초콜릿(Sexual Chocolate)'을 가져왔습니다. 섹시한 트럼펫 연주와 조용히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쳇 베이커의 변태스럽고 불안정한 심리가 더해져 몽환적인 영화의 핏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섹슈얼 초콜릿이 떠올랐거든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저의 와인 지론에 따른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섹시한 남자의 표본인 에단 호크를 고려하기도 했지만요. 섹슈얼 초콜릿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시라와 진판델을 블렌딩한 아주 힘찬 풀바디 레드 와인입니다. 전반적으로 진득한 블랙 베리향에 스파이시, 후추, 가죽, 담뱃잎, 감초 등이 강하고 뾰족한데 그 안에 매혹적인 초콜릿향과 오크,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맵‧단‧짠맛'으로 똘똘 뭉친, 꾸덕하고 맛있게 자극적인 떡볶이 같은 와인이랄까요. 쳇 베이커의 음악처럼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매력적이고 중독적일 수밖에 없는 맛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본 투 비 블루>에 섹슈얼 초콜릿은 끊었던 담배를 생각나게 하고 잠자고 있던 성욕을 건드리는, 그야말로 자극에 자극을 더하는 페어링이었습니다. 실제로 섹슈얼 초콜릿을 만든 와인 메이커도 이 와인이 인간의 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리라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이 와인은 수요일 저녁 피자와 어울리며(사실입니다), 오픈 즉시 여자들과 함께 마시길 추천합니다(그럴 듯합니다)’라고 라벨에 대놓고 적어둔 걸 보면요. 만약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섹슈얼 초콜릿을 '박스 떼기' 해둘 일이고, 여자라면 그런 남자는 조심할 일입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 스틸컷. 사랑은 와인 같아요. 너무 신기하고 강렬해요


저는 자주 휘청이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며 응원하는 여자친구 제인에게 크게 의지하면서도 여자친구의 삶은 응원해주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나쁜 남자 쳇 베이커로부터 벗어나길 결심한 제인을 보며 안도합니다. 정작 저는 영화를 다 보고도 며칠 동안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와 ‘I fall in love too easily’를 무한 반복 틀어놓고 갈팡질팡, 글루미한 쳇 베이커 무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요. 확실히 그의 음악은 이렇게나 중독적이지만,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니 다행입니다. 




2024.11

Letter From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본 투 비 블루 (Born to be Blue)

개봉ㅣ2016, 미국, 캐나다, 영국

감독ㅣ로버트 뷔드로

출연ㅣ에단 호크(쳇 베이커), 카르멘 에조고(제인/일레인), 칼럼 키스레니(딕)

한줄평ㅣ이 영화 한 편에 와인 한 병이면 그곳이 바로 재즈바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섹슈얼 초콜릿 2020 (Sexual Chocolate Red)

산지ㅣ미국, 캘리포니아

품종ㅣ시라, 진판델

도수ㅣ14.5%

특징ㅣ초콜릿, 오크, 바닐라, 스파이시, 후추, 가죽, 감초, 블랙베리, 체리, 무화과 등 복잡하고 다양한 맛

가격ㅣ4-5만원대

한줄평ㅣ입에 착착 달라붙는 자극의 끝판왕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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