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mja Nov 05. 2024

Editor's Pick 여름을 훑고간 와인



무겁고 복잡한 것보다는 가볍고 선선한 것들이 생각났던 여름, 

우리의 더위를 달래주고 지나간 와인 리스트. 








열대 과일향이 풍성했던 피아노

이 본조르노 피아노 2022(I Buongiorno Fiano 2022)

본 조~르노! 3만원 소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와인을 만났습니다. “이 가격에?”라는 말이 입밖으로 터져 나오게 만든 와인은 ‘이 본조르노 피아노’입니다. 이탈리아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의 오너가 직접 운영하는 와이너리에서 피아노(Fiano)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인데요. 화사한 백합 향에 잘 익은 복숭아, 망고, 멜론, 망고스틴 등 프루티한 맛을 풍성하게 담고 있습니다. 은근한 미네랄도 따라오고요. 입안에서 매끈하면서도 둥글둥글하게 움직이는 질감에도 기분이 좋아져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왔습니다. 저는 과일 값이 치솟는 겨울, 과일 대용으로 마셔볼 요량입니다.

이탈리아 살렌토 | 피아노 | 3만원대


영화 <리플리> 스틸컷. 이탈리아 배경의 연한 노란빛 영화는 상큼한 레몬맛이 지배적인 화이트와인을 부른다


플라네타 테레빈토 그릴로(Planeta Terebinto Grillo) 2021

생소한 품종을 만나면 호기심이 생깁니다. 곧바로 검색에 들어갑니다. 그릴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으로 상큼하고 가벼운 화이트와인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1만원대의 기분 좋은 가격에 주저 없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함과 쌉싸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짭짤한 미네랄과 꿀향도 느껴집니다. 하루는 감바스와 함께, 하루는 샐러드&치즈와 함께 마셨는데 후자가 더 좋았습니다. 이날 저는 미국 영화긴하지만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가 주요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리플리>와 함께 마셨는데요. 전체적인 영화의 색감에 연한 노란빛이 많아 가볍고 상큼한 레몬맛 화이트 와인과 성공적인 조화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플라네타의 샤르도네이 평이 조금 더 좋다는 걸 메모해뒀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그릴로 1만원 후반대 


Picked by 여니고니







생 클레어 비카스 초이스 소비뇽 블랑 버블스 (Saint Clair Vicar's Choice) 2023

애플 사이더 같기도 한 것이, 피크닉에 참 잘 어울리겠다 싶은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청사과향 탄산이 훅 치고 간 자리를 라임향과 풀향이 차례로 채우는, 여러모로 풋풋하고 상큼한 라벨이에요. 대단한 깊이감이나 복합미가 있지는 않지만 그만큼 가볍게 언제든 즐길 수 있고, 게다가 1만원대라는 가격대를 생각하면 가성비마저 철철 흐릅니다. 당장이라도 피크닉을 가고 싶지만, 급한대로 푸릇푸릇 잔디밭 썸네일의 Park Jazz 플레이리스트와 함께했어요.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 1만원대 후반 


테누타 울리쎄 피노 그리지오 2022 (Tenuta Ulisse Pinot Grigio)

방콕으로 떠난 여름 휴가 중 마셨던 와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와인입니다. 복숭아, 살구 같은 핵과 캐릭터가 강했고 레몬, 자몽 계열의 시트러스 향도 꽤 단단하게 거들었죠. 보통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의 경우 바디가 가벼운 경우가 많은데요. 이 와인의 경우 바디가 묵직하다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날아가지만은 않았는데, 그만큼 구조감이 탄탄해서였던 것 같아요. 방콕의 밤, 라이브 바, 피노 그리지오. 여기서 또 뭐가 필요할까요?

이탈리아 아브루쪼 피노 그리지오  3만원대




까델 바이오 랑게 네비올로 (Ca'del Baio Langhe Nebbilolo) 2021

날이 더워진 여름이면 레드 와인에 손이 잘 가진 않지만, 바롤로 와인은 예외입니다. 소위 '와인의 왕'이라고 불리는 바롤로 와인은 계절을 불문하고 언제든 실망시키는 법이 잘 없죠. 봄과 여름 사이, 서래마을에서 만난 여니고니와 함께 도란도란 바롤로 와인을 나눠 마셨습니다. 네비올로 품종 특유의 잘 익은 베리향에 시간이 갈수록 수그러드는 탄닌과 산미의 밸런스가 좋았고 주문한 음식 중에선 흑돼지구이와 가장 궁합이 찰떡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탈리아 바롤로 네비올로 | 4만원대





네이키드(Nakd) 2022

이번 여름 참 잘 마셨다 싶었던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입니다. 귤, 시트러스, 꿀, 복숭아 등의 상큼달큼한 향에 풀내음이 은은하게 풍기는데, 과하게 멋을 부렸다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소비뇽 블랑처럼 느껴졌어요. 이날 저는 안주로는 후토마키를 주문하고, 최화정 유튜브 ‘여름 국수’ 편을 곁들여 보았습니다.

뉴질랜드 말보로 | 소비뇽 블랑 | 3만원대 


덕 헌터 말보로 소비뇽 블랑 2022(Duck Hunter Malborough Sauvignon Blanc)

저의 최애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중 하나인 ‘푸나무(Pounamu)’를 사러 와인샵에 갔다가, 사장님의 추천으로 이 아이를 데려오게 됐습니다. ‘오리 사냥(Duck Hunter)’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꽤 사실적으로 그려진 오리의 모습에 왠지 모를 정이 가기도 했고, 요즘 또 저의 지론 중 하나가 ‘뭐라도 새로운 걸 많이 경험해보자’이기도 해서요. 결론적으로, 모험 성공입니다. 망고와 같은 열대 과실향에 살구, 풋사과 등 말보로 소비뇽 블랑 특유의 프레시한 풋내를 담고 있으면서도 푸나무와 굳이 비교하자면 산도가 조금 더 정제되어 있달까요. 톡 쏘는 듯 뾰족한 신 맛이 부담스러운 분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역시 뭐든 도전이 필요한 법인가봐요. 푸나무 못지 않은 오리의 세찬 매력에 저의 최애 와인 리스트에도 약간의 변동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말보로 | 소비뇽 블랑 | 2만원 후반대 


산타 크리스티나 피노 그리지오 델레 베네찌에 2022 (Santa Cristina Pinot Grigio delle Venezie)

올해 여름, 유독 피노 그리지오를 줄기차게 마신 1인입니다. 피노 그리지오라는 품종 자체가 아주 캐릭터가 강한 품종은 아닌 만큼 라벨별로 차이가 아주 두드러지지는 않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인지 그중에 제 맘에 꼭 드는 라벨을 찾기가 은근 어렵더라고요. 근데 제가 얼마 전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이탈리아 델레 베네찌에산 ‘산타 크리스티나’라는 와인인데요. 시트러스, 복숭아, 멜론 향이 감돌고 약간의 미네랄을 머금은, 전반적으로 저의 입맛에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 상쾌해서 데일리로 제격입니다. 1만원의 흡족한 가격대까지 생각하니 참 기특하기만 하네요. 내년 여름에도 너다, 크리스티나.

이탈리아 델레 베네찌에 | 피노 그리지오 | 1만원대 후반


Picked by 감자

이전 21화 오늘도 평범한 삶을 헤매고 있는 고달픈 영혼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