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 X 앤젤린 멘도치노 피노누아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로코물이 우수수 떨어지는 요즘. 나름의 고심 끝에 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넷플릭스 시리즈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을 조금씩 꺼내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이 드라마가 어드벤트 캘린더인 셈입니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선물을 열어보는 어드벤트 캘린더처럼, 저는 이 드라마를 한 편 한 편 꺼내보는 것으로 저만의 연말 온도를 뭉근하게 올리는 걸로요. 그러기에 참 딱인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 자체가 12월 1일부터 24일까지의 이야기인 데다 배경이 무려 노르웨이입니다.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 장식이 촘촘히 박힌 거리, 눈 덮인 거리 위를 썰매로 활보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가는 게 일상인 도시. 트리 장식을 사는 날이 마치 우리네 김장날처럼 온 가족 행사인,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사람들의 얘기란 얘깁니다(노르웨이에 실제로 가본 적은 없습니다만). 스토리는 둘째 치고 한 장면 한 장면 온통 연말 무드로 점철된 배경과 캐롤 배경 음악만으로, 저만의 ‘어드벤트 드라마’가 되기엔 손색이 없었습니다.
물론 스토리도 둘째 치기엔 매우 차집니다. 노르웨이에 사는 30대 요한네가 크리스마스에 ‘눈치 보지 않고’ 집에 가기 위한 12월 한 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해보면 우리네 설이나 추석처럼 서양에선 크리스마스가 민족 대명절일 테니까요. 명절 때 혼기가 꽉 찬 싱글에게 ‘어디 누구 만나는 사람 없냐’며 묻는 부담스러운 문화(?)는 전 세계 어디든 똑같구나, 동서양 대통합 동질감을 안고 와인 한 병을 오픈했습니다. 연말 기분 뿜뿜 (혼자) 내는 날 마셔야지, 내심 벼뤄둔 ‘앤젤린 멘도치노 피노누아’로요. 프레쉬한 라즈베리, 딸기 향 뒤로 고소한 치즈향과 오크향이 착실하게 따라오는, 한 마디로 입에 짝짝 달라붙는 미국 레드 와인입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연말에 마실 와인 리스트를 꽤 부지런히 꼽아왔는데, 그중 언제 마셔도 실패가 없을 와인이라 자부하며 아껴 뒀었지요. 모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해가 들지 않아 어둑한 거실에서 저는 그렇게 나름 로맨틱하게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12월엔, 살짝 잔당감이 있는 와인도 좋습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 요한네는 눈치 보지 않고 크리스마스에 집에 잘 갔냐고요? 12월 1일 모인 가족들의 등쌀에 홧김에,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해버린 그녀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열심히 연애 사업을 벌입니다만, 그것이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현실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그래야 드라마가 되는 거겠죠).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 이 남자, 저 남자 기웃대다 보니 방탈출 카페(가 글쎄 노르웨이에도 있더라고요)에서 직원을 패는 미친X을 만나기도, 싫대도 자꾸만 속절 없이 들러붙는 거머리남을 상대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새파란 어린 남자에게 폭 빠져지냈는데 발리로 훌훌 가버린다나 어쩐다나. 이런 요한네의 남일 같지 않은 고군분투 연말 스토리가 시즌 2까지, 저로서는 고맙게도 꽤 진득하게 이어집니다.
단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어드벤트 캘린더의 원칙을 자꾸만 깨는 것이지만요. 하루에 하나의 선물만 꺼내보는 게 원칙이건만, 영화도 와인도 자꾸만 더 보고 마시고 싶어지니 이 속도로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무사히 끌고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괜찮아요. 세상에 볼 영화는 많고, 추운 날 굳이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와인도 두둑히 쟁여 뒀겠다, 일단은 내키는대로 보고 마실 요량입니다. 와중에 가장 중대한 화두는 뱃살인데, 12월이잖아요? 이 또한 연말 한정입니다.
2024.12
Letter From 감자
2말3초를 여행매거진 에디터로 살았고, 지금은 어쩌다 IT 업계에 속해 있습니다. 일단 좋아하면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반복으로 보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죠. 거북이, 돌고래, 초록 정원에 차려진 와인상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 중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 (Home for Christmas)
개봉ㅣ2019, 노르웨이
장르ㅣ로맨스
감독ㅣ페르올라브 쉐렌센
출연ㅣ이다 엘리세 브로크(요한네), 펠릭스 산드만(조나스), 오드예이르 투네(헨리크)
한줄평ㅣ영미권 로코와는 또 다른 북유럽 로코의 맛
앤젤린 멘도치노 피노누아 2021 (Angeline Mendocino Pinot Noir)
산지ㅣ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마운티
품종ㅣ피노누아
도수ㅣ14.1%
특징ㅣ라즈베리, 딸기, 고소한 유제품, 오크향,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는 약간의 잔당감
가격ㅣ3만원대
한줄평ㅣ연말 어느 자리에서나 무난하게 사랑 받을 레드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