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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필요할 땐 아멜리를 만나요

<아멜리에> X 산타 아니타 글루바인

by gamja

저는 겨울을 (정말) 싫어합니다. 아무리 유분이 많은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응, 상관 없어’ 하며 바싹바싹 마르는 피부, 뼛속까지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 그 때문에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잔뜩 긴장한 승모근으로 매일매일 괴롭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출퇴근길은 또 어떻고요. 하지만 제가 뭐, 철새도 아니고 겨울이라고 따뜻한 곳으로 도망갈 수도 없으니 어쩌겠어요. 스스로 씩씩하게 월동해야죠. 그래서 저에게는 겨울만 되면 생존을 위해 실천하는 여러 가지 루틴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겨울을 나는 가장 ‘애주로운’ 방법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와 따뜻하고 달달한 포도주 뱅쇼(Vin chaud) 한 잔(에서 서너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레드 와인에 시나몬, 정향 등 각종 향신료와 과일, 설탕을 넣고 달작지근하게 끓인 뱅쇼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원기 회복에 감기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는거, 다들 아시죠? 알코올이 좀 있을뿐이지 쌍화탕과 다를 바 없다니까요? 그러니 겨울에 마시는 뱅쇼만큼 합법적(?)인 음주 행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매일 술을 마셔도 이게 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백한 이유가 있으니, 알코올인들이여, 당당해지셔도 됩니다. 뱅쇼는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12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마시는 전통주이기도 한데요. 그래서인지 저는 뱅쇼를 마시면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뱅쇼가 더욱 생각나곤 합니다. 저는 뱅쇼의 계절을 맞아 12월 첫주의 금요일 저녁, 산타 아니타 글루바인(독일식 뱅쇼)과 따뜻한 영화 <아멜리에>와 함께 본격적인 겨울밤을 맞이했습니다.



110332_2534995_1733814684544723012.jpg 영화 <아멜리에> 스틸컷.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죠


<아멜리에>는 전 세계인들로부터 수많은 극찬을 받은 영화인데다 2001년 첫 개봉 이후 한국에서도 2012년, 2021년 두 번이나 재개봉할 만큼 한국인들의 사랑도 듬뿍 받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계실 확률이 높지만 영화는 겨울이나 크리스마스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뜬 12월, <아멜리에>가 문득 떠오른 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서 크리스마스를 연상케하는 빨강과 청록의 보색 대비를 정교하게 유지하는 색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장르가 로맨스 코미디이긴해도 사랑 타령만 하다 끝나는 영화는 아니고요, 작정하고 관객을 웃기겠다며 개그에 무리수를 둔 영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인공 아멜리 풀랑(오드리 토투)의 따뜻한 발상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만드는 은은한 로맨스 코미디 영화입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신경과민의 엄마, 무뚝뚝하고 공감 능력 제로인 아빠의 사이에서도 주변을 살뜰하게 챙길 줄 아는 성인으로 잘 자라준 아멜리. 어느 날 누군가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상자를 발견하는데요. 아멜리는 그날 밤 이 보물상자를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리라, 그리고 만약 그가 감동한다면 평생을 좋은 일만 하며 살리라 다짐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멜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보물상자를 되찾은 ‘도미니크 브레토도’씨가 크게 감동한 것을 확인한 아멜리에게는 이런 감정이 밀려옵니다. “이 순간 모든 게 완벽했다. 부드러운 햇빛, 바람에서 나는 향기,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크게 호흡하자 사랑이 샘솟으며 삶이 단순명료하게 느껴졌고 다른 이를 돕고 싶다는 감정에 푹 빠졌다.” 이후 아멜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멜리 매직’이 펼쳐집니다. 그것이 아멜리의 선행으로 일어난 변화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지만요.



110332_2534995_1733814730873995644.jpg 영화 <아멜리에> 스틸컷. 아멜리가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난 제 마음에도 충만한 사랑이 샘솟습니다. 따뜻한 포도주 여러 잔에 몸에는 열기가 돌고요. 여러모로 온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12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아멜리 매직이 필요한 달입니다. 참, 산타 아니타 글루바인 와인은 직접 과일이며 향신료를 넣고 끓일 필요가 없습니다. 유리잔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1분만 데우면 오렌지와 시나몬, 정향이 피어오르는 따뜻하고 달달한 포도주가 완성됩니다. 편의점 삼각김밥처럼 저렴하고, 쉽고, 빠르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일종의 ‘패스트 와인’이랄까요. 곰국처럼 집에서 직접 뱅쇼 한 솥을 끓여놓고 매일밤 홀짝이면 더 좋겠지만, 우리의 12월은 몸도, 마음도 바쁘잖아요? 12월만큼은 조금 쉽게 가보자고요.




LETTER FROM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 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ㅣ네이버 영화




















아멜리에 (Amelie Of Montmartre)

개봉ㅣ2001, 프랑스, 독일

감독 | 장 피에르 주네

출연ㅣ오드리 토투(아멜리), 마티유 카소비츠(니노)

장르ㅣ코미디

한줄평ㅣ저 역시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어요



















산타 아니타 글루바인 (Santa Anita Gluhwein)

산지ㅣ독일, 바이에른

품종ㅣ슈페트부르군더, 트로링거

도수ㅣ8~9%

특징ㅣ오렌지, 정향, 시나몬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와인

가격ㅣ1만원

한줄평 | 만원짜리 한장으로 즐기는 1L 대용량의 가성비 갑 뱅쇼(글루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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