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말 한마디가 교양의 품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명한 대처는 교양과 품격이라고 부르는 ‘처세술’ 이기도 하다.
교양의 품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 공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머물면서 호흡하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품격도 달라진다.
교양이란?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에 입각,개발해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교양
과연 우아하고 품격이 있기만 하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품위유지에 가려진 또 다른 교양의 실체가 있기도 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의 감정조절을 잘 하지못해서 ‘교양’의 교자를 혼자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상황분간 못하고 본인 감정을 앞세우기 때문에 성숙지 못한 행동의 선을 넘어버리는 것이다.
교양의 교육목표는 이렇다.
“추정된 사실들을 동요시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며 현상들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폭로하고 사람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켜 그들이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회생활의 무기이자 우아함의 인격 품위는 교양이다.
모르면 ’병‘ 알면 ’약‘ 되는 것이 교양머리 이다.
즉, 나 자신의 처신머리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인격의 품위를 높이는 건 말과 행동 그에 따른 책임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감성 또한 잃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도 하고 고상한 척척박사가 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교양이 있는 것 같지만
뒤로는 호박씨 까면서 추한 감정들이 휘젓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 어떤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환영할 수 있는 것이 교양 있는 지성의 증거이다” 라고 이해와 수용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 된다.
조금만 배려하고 그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면 우아한 품격의 폭은 더 커질 것이고 지성의 세련미는 단연 돋보일 것이다.
교양이 있다는 건 예의범절이 반듯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모든 적당히가 좋은 것 같다.
굳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한다 라는 것은 인지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상대를 배려해야 함은 유치원생도 다 아는 도덕적 윤리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상대의 다양성을 존중하되 그 사람의 못난 행동을 트집 잡거나 분노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아야 된다. 상대의 싫어하는 부분, 상대의 못난 모습이 보기 싫다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자. 마음이 마음을 지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교양머리는 가꾸는 건 마음과 머리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역 이라는 것